버려야 채워지는 마음
버려야 채워지는 마음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5.04.09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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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내려보니 아파트 광장에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 처음 이사 올 때는 작은 나무에 볼품없는 꽃을 피우더니 이젠 제법 진한 향기를 뿜으며 만개하였다.

아파트로 이사올 때 붙박이장이며 수납공간이 다 되어 있었기에 이삿짐센터의 도움없이 며칠에 걸쳐 짐을 옮겼다. 바쁘기도 하고 집안일에 있어서는 느린 탓에 시골짐을 옮기지도 못하고 살림살이에 필요한 것만 채워 나갔다.

이사를 하면서 필요없는 물건을 정리하고 깨끗하고 넓은 새 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며칠 전 미뤄 두었던 에어컨 설치를 앞두고 뒷 베란다를 치우면서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매일 켜켜이 쌓이는 먼지처럼 쌓이는 게 살림살이인지 꺼내 놓고 보니 한 가득이었다. 쓰레기를 버리려 갔다가도 재활용 코너에서 쓸 만한 물건을 발견하면 망설임없이 주워오는 버릇 때문에 아직 쓸 곳을 찾지 못한 물건이 쌍여 갔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막막했다.지금 당장 쓸모가 없더라도 언젠가는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버리는 것을 막았다. 옷 장을 열어봐도 마찬가지이다. 1년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은 버려야 한다는데 벌써 몇 년 째 넣고 빼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버리지 못하고 옷장안에 걸린 옷처럼 욕심도 내 마음속을 들락거리며 어지럽힌다. 직업상 매년 강사계약서를 다시 쓰게 되는 데 올해도 작년에 했던 학교수업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 보면 다행이다라고 할 수 있으나 계약조건은 달라져서 수입이 조금 줄었다. 욕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음 을 알면서도 심란했다.

비워내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을 텐데 한정된 공간속에서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고 곰팡내가 나기 시작한다. 큰 맘 먹고 박스에 옷을 정리했다. 읽지 않는 책도 필요한 사람에게 주려고 모아 두었다.

청소를 해도 그대로이더니 버릴 것을 버리니 이제야 공간이 보이고 깨끗해졌다. 묵은 때를 말끔히 벗긴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

바람에 꽃잎을 떨구고 때를 거스리지 않아야 더 화려한 꽃잎을 피우는 목련꽃처럼 욕심의 그릇을 비워낸다. '그래도 다행이야'라는 말을 곱씹으며 내 자신을 돌아보고 무언가를 채우기전에 비우는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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