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와 커피믹스
아메리카노와 커피믹스
행복의 뜨락
  • 박윤희
  • 승인 2014.04.29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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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희 수필가.

요즘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가게 중의 하나가 커피전문점이다. 또, 누가 커피전문점해서 돈 벌었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갑작스럽게 여기저기 붐처럼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다방 세대인 나는 커피전문점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를 만나서 딱히 갈 장소가 없을 때나 가서 이야기 나누는 정도로만 이용하는 나로서는 커피의 참 맛을 알지 못하고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이용하지 않아 커피를 시키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커피에 대해 잘 모르면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된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이런 경우 그저 다른 사람들과 같은 거로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커피마니아에게는 나처럼 말하는 사람을 무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도 커피마니아는 아니지만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일회용 커피믹스이다.

내가 커피믹스를 좋아하는 것은 극히 개인 취향이다. 그러나 간혹 나에게 촌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우아하고 커피믹스를 마시면 촌스럽다는 얘기인가?얼마 전, 친구 중 유일하게 결혼을 안 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을 때 마치 내가 시집가는 것처럼 설 레였다.

친구 중에 일찍 결혼한 친구는 아들 장가보낸다는 말도 나오는 이 때 결혼을 한다. 결혼식의 계기로 친구들을 짧게는 5-6년, 길게는 10년 정도,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도 있었다. 펑퍼짐한 아줌마로 변한 친구들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모처럼 만나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기에 이야기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급히 가는 친구들은 먼저 가고 몇몇 친구들과 가까운 커피숍을 찾았다. 우리의 목적은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닌 수다를 떨기 위한 장소가 필요했다.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 주문이 어려워 머뭇거리니 한 친구가 다 아메리카노 시킨다는 말에 친구 뒤에다 대고 달게 해 달라는 내가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우리 동네 아줌마들은 아메리카노밖에 안 먹어. 설탕도 안 넣고 하나도 섞이지 않은 오리지날로 먹어야 순수한 커피 맛이 나잖아 ." 강남의 건축사 사모님이 된 친구의 말이다. 강남에 살고 있는 친구가 동네 아줌마들과 매일 집 앞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말에 아메리카노가 오늘 따라 더 낯설게 느껴졌다. 커피숍에 들어가서 처음 나눈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계속되면 될수록 대화의 주제나 공감대가 좁아지고 한 사람의 일방적인 이야기로 변해 가고 있었다. 세월 때문이었을까? 주어진 환경이나 삶이 달라서였을까? 두 시간이란 시간은 금세 훌쩍 지나갔고, 우리는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세월이 흘러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과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많은 시간 속에서 그들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내가 모르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었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뭔가 알 수 없는 괴리감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20년 후 서로의 미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곤 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당시 친구들의 성격이나 행동을 통해 지금의 미래가 보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도 커피의 종류와 같지 않을까?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다양한 계층의 있는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커피의 종류가 다른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커피를 마실 때 무엇을 마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마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화창한 것 같다.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커피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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