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이 되어준 시와 음악
디딤돌이 되어준 시와 음악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3.10.1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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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시와 음악이 흐르는 설렘으로 나의 문학은 시작되었다. 치마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교정 뒤편에서 말타기 놀이를 즐기던 말괄량이 중학시절, 가을이면 며칠은 잠깐 소녀로 돌아가는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음성고 문학 동아리인 '길문학'은 해마다 가을이면 문화원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내가 고 2때 음성고와 음성여고가 합쳐져 남녀공학이 되기전까지 음성고는 남학교였었다.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던 사춘기 시절 '길문학' 오빠들의 시화전은 고상한 척 시화전에 가서 시를 음미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오빠의 시화판넬옆에 초콜릿이며 꽃을 붙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시화전이 열리는 기간에는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혼자 가기는 쑥스러워서 친구손을 끌고 문화원으로 향했다. 미리 준비해간 꽃이나 초콜릿을 전시회장에 준비된 테잎으로 마음에 드는 시화판넬옆에 붙이고 시를 쓴 오빠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슴 두근거리는 시간을 보냈다.

시화전 마지막 날에는 지금의 '작가와의 만남'처럼 '길문학'회원들과의 만남의 자리가 '시낭송회'라는 형식으로 열렸다. 그렇게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렘을 느끼면서 '시'를 알게 되었고 그 세상으로 들어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1986년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금의 음성중학교 자리에 있던 음성여고가 음성고등학교와 합쳐져 남녀공학이 되면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길문학'에 들어가 7기회원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어려운 어휘를 일부러 찾아내어 겉멋이 잔뜩 든 시를 쓰고도 동경하던 세상에 들어 온 것만 기쁘고 행복했다.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행해지던 '시화전'의 주인공이 되어서 시화판넬을 걸고 시낭송회를 하면서 문학의 행보를 시작하게 되었다. 졸업 후 '길문학'회원은 '디딤돌'이라는 선배들의 모임에 낄 수 있었는데 나는 정식 회원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가끔 선·후배가 함께하는 야외 문학활동을 가는 정도였다.

야외로 나가면 선배님들은 즉석에서 주제를 정해주거나 주제없이 글을 쓰게 한 후 작은 상품을 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길문학 선배들은 대부분 시를 썼었는데 기인같은 분도 몇 분 계셨고, 예술가의 끼를 다분히 가지고 계셨으며 시화전, 시낭송회, 야외에서의 백일장 등 진취적인 생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해 오셨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문학써클인 '길문학'은 학교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던 동아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선배들의 힘든 시기도 있었고 해체 위기를 겪은 적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를 쓰면서 처음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지금 나는 수필을 즐겨 쓰는 편이다. 무엇하나 잘 쓰지도 못하고 자꾸만 내 치부를 드러내고 있지만 글을 쓰고 있는 삶에 만족한다.

첫사랑의 설렘처럼 '길문학'과 함께 한 시와 음악이 흐르던 시낭송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내가 지금까지 문학을 이어오게 하는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어릴 적 간직해 둔 보따리를 오랜만에 풀어 꺼내 본 그리운 이름 '길문학'!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읊고 내 마음을 흔들던 그 시절로 단 몇초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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