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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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13.06.2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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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불꺼진 방안으로 거리의 네온불빛이 스며 들어 온다.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뒤척거려보지만 머릿속만 더욱 복잡해져오고 잡념은 사그라들줄 모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휴대폰 분실시 대처방안'이란 검색어를 치니 여러 가지 의견이 올라와 있다.

지난 사월초파일에 절에 갔다가 실수로 휴대폰을 잃어 버렸다. 그 일로 인해 연휴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자책하며 보내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휴대폰을 새로 사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보다는 손바닥만한 기계안에 고스란히 옮겨 둔 기억이 문제였다. 작년 3월에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휴대폰은 통화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하나 하나 기능을 익히게 되면서 스마트폰의 놀라운 기능과 정보속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수백개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것은 물론 수첩에 적을 필요도 없이 메모기능을 사용하여 중요사항을 기재하였다.

또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도 필요없이 해상도 좋은 카메라기능을 사용하여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고 갤러리에 저장해 두었다.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스마트폰에 들어 있었고 심지어 주민등록증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명의가 도용되어 잘못된 곳에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2차 피해가 우려되어 며칠동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아팠다.

휴대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점점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감퇴하였다. 유선전화만 사용하던 시절에는 수십개의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지 않아도 바로바로 기억해 내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해서 사용하고 부터는 외워서 전화를 거는 경우가 드물었다. 심지어 내 번호가 무엇인지조차 한참을 생각해서 알아낼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저장해야 할 기억을 작은 기계에 의지하는 습관이 생겼다. 문명의 이기를 쫒다보니 사람의 기억을 저당잡힌 꼴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잃어버린 스마트폰에 가둔 수백개의 전화번호와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수백장의 사진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전보다 더 좋은 스마트폰을 새로 샀다.

여전히 만나는 사람마다 전화번호를 주고 받으며 저장해 두고 쓸데없는 사진도 넘치도록 찍어서 갤러리에 보관하고 있다.

TV를 사람을 바보처럼 만든다 하여 '바보상자'라 했는데 그럼 휴대폰은 사람의 기억을 훔쳐가는 '도둑상자'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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