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하는 집
사람과 함께하는 집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2.10.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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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골목길이 휑하다.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들려 오던 반가운 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 없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하루에 한 번씩 들르던 비산리집이 이젠 정말 빈집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 교육문제로 음성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비산리 집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둘째아들 초등학교 3학년 때 졸라서 장에서 사온 흰색 발바리로 이름을 '흰솔이'라고 지었다.

흰솔이를 데리고 올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시골집에 그대로 두고 매일 매일 끼니를 챙겨주러 들렀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홀로 지키는 흰솔이는 남편과 내가 갈 때마다 반갑게 꼬리치고 달려 들었다.

하루종일 골목길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사람을 그리워했을 흰솔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을 걸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흰솔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원에도 데리고 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더니 결국 얼마 못 가 남편 혼자 집에 들렀더니 흰솔이가 죽어 있었다. 남편은 흰솔이를 뒷산에 묻어 주었다. 1년 남짓 홀로 집에 둔 게 마음에 걸렸다.

우리와 함께 살았다면 8년의 세월보다 더 오래도록 주인에게 꼬리치며 살았으리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그 후로 날마다 시골집을 갈 필요가 없었다. 일주일에 두 세 번 우편물을 가지러 가거나 드라이브삼아 들리는 집이 되어 버렸다.

시골집이라 낡기는 했었지만 우리가 살았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거미줄뿐만 아니라 벽틈이 갈라지고 흙벽돌이 무너지는 곳도 생겼다. 집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당 한 켠에는 주인 잃은 집이 하나 더 무너지고 있었다.

결혼해서부터 15년 세월을 지낸 시골집은 작지만 따뜻한 추억이 서린 곳이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우리 두 부부가 터를 일군 곳이고 추운 겨울 사방을 이불로 커텐을 치고 한 방에 나란히 네 식구가 누워 코끝까지 이불을 덮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곳이다.

내 품안에 쏙 들어오던 두 아들을 길러내던 따뜻한 시골집의 추억은 곳곳에 남아있다. 벽 귀퉁이에 그려진 형제의 키재기선과 날짜, 삐뚤빼뚤한 글씨로 침대옆벽에 써 내려 간 아이들의 낙서, 둘이서 티격태격 흙장난을 일삼던 마당, 조잘거리며 엄마치맛자락 끝에 매달리던 아이들이 있어서 더 없이 행복했다.

그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느 새 중2, 고2가 되어 훌쩍 커 버렸고 방 하나에서 옹기종기 모여살던 시절을 지나 새로지은 J아파트로 옮길 준비로 마음이 들 떠 있다.

수납공간이 갖춰지고 모든 것이 깨끗하고 편리하게 준비된 아파트로 11월에 이사하기로 정하고부터는 이삿짐을 하나 둘 포장해 놓고 마음은 벌써 입주해서 살림을 차렸다. 우리 부부의 첫 보금자리였던 시골집을 떠나 새 집으로 옮기려니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

지금까지 주택에서만 살다가 아파트로 가게 되니 이웃과의 어울림이 우선 걱정이다. 흙냄새 맡고 살다가 공중에 붕 떠서 사는 것도 조금 걱정이 된다.이사를 앞 두고 꿈을 꾼다.

옛날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시골집의 따뜻함을 고스란히 아파트로 가져와 이제는 청년이 되어 가는 두 아들과 말 한마디라도 정겹게 나누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세월과 함께 엮어가는 새 집에서 사람냄새 풍기며 남편과 오래도록 함께 살고 있는 집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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