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남매
육남매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2.08.1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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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햇볕이 좋은 일요일 아침 노란 티셔츠 두 장을 나란히 빨래줄에 너는 순간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올 여름 유난히 덥고 바쁜 가운데 해마다 있는 시댁식구들 모임을 하였다. 장소는 막내 시누이집 근처인 강원도 화천 백운계곡으로 정하고 그 곳으로 모였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서울 둘째고모부가 우리앞에 노란색 티셔츠를 펼쳐 놓았다. 커플티인 것이다. 모두는 스스럼없이 그 티를 입고 서로 바라보며 깔깔거리고 아이로 되돌아간 듯 왁자지껄 신이 났다.

강원도 큰 형님이 사온 횡성한우에 둘째고모가 사온 장어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물가로 내려가 서로 흥에 겨워 단체사진을 찍었다. 계곡을 둘러 보니 노란티를 입은 우리 가족은 어디에서나 눈에 띠었다.

남편은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처음 결혼할 때부터 시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홀로 3남매를 키워 오신 친정엄마는 내가 시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시집가길 바랬기에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하셨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에는 내가 바라는 대로 남편과 결혼할 수 있었다.시부모님이 계시지 않기에 그 사랑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나는 분에 넘치는 시누이 사랑을 받으며 결혼생활을 해 왔다.

남편의 큰 누나인 강원도 형님은 내게 시어머니이자 친정어머니이다. 엄마가 몇 년전 아팠던 이후로 된장이며 고추장을 강원도 형님께서 챙겨 주셨다. 친정엄마네 김장까지 내가 책임져야 했는데 작년에는 그 고민도 해결해주셨다.

작년 겨울 김장때가 다가오면서 한번도 김장을 혼자 해 본적이 없던 나는 끙끙거리며 속앓이를 했다. 그러다가 강원도 큰형님이 같이 하자며 전화를 하셨다. 김장을 하는 날에도 육남매는 모두 강원도로 모였다. 김장을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막내시누이와 서울 형님도 함께 도와주러 온 것이다.

남자들도 모두 팔을 걷어 부쳤다. 300포기정도 되는 배추를 굴 속같은 통에서 소금에 절이고 밖으로 꺼내어 씻는 힘든 과정은 모두 남자들이 담당하였다. 여자들은 배추속을 채울 무채를 썰고, 파를 썰고 속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였다.

그 모든 뒤치다꺼리는 모두 큰형님 몫이였지만 늘 그렇듯이 묵묵히 일을 하셨다. 그 날 김장을 담근 일은 그 뒤로 우리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육남매는 강원도 큰형님댁에 모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 곳에 가면 옛날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음식맛을 맛볼 수 있고 오래묵은 된장과 고추장이 큰형님의 넉넉한 품안에서 익어가고 있다.

별 일이 없다하더라도 누군가 한 형제가 강원도 간다는 기별만 넣으면 서로 시간이 맞는 한 같이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형제간에 간혹 다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들에게는 악한 감정이 없다. 지금까지 나는 한번도 시누이 시집살이를 해 본 적이 없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대신해 음식을 만들고 아침밥을 챙겨주는 조건없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청주 아주버님댁으로 제사를 지내러 갈 때도 가까이 살고 있는 고모가 항상 도와주신다. 서로가 가진것을 내세워 시샘하지 않고 깔보지 않으며 가진것이 없어도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그들과의 만남은 즐겁다.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있는 모임을 우리 아이들도 기다린다. 큰 아들은 여름모임을 하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겨울에는 강원도로 가느냐며 수차례 확인을 한다. 바람에 춤추듯 흔들리는 노란 티셔츠가 뽀송뽀송 말라가는 오후, 나는 육남매의 가족으로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함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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