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벽을 깨다
새벽, 벽을 깨다
금주의 시
  • 음성뉴스
  • 승인 2024.01.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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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재록 시인
증재록 시인(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밤사이 베름빡에 내걸린 새 달력은
어제의 나날을 붉은 해기둥 아래 묻어버리고
겨울이 내보이는 봄을 꼽고 있다
어둠을 가르고 발걸음 종종거리는 조바심으로
앞당겨지는 숨의 길
사방을 살펴 오므린 두 손을 감싸주는 입김
그 사이 새벽은 해에 길 터주고 첫날을 연다
순간순간 봉오리 맺으며 활짝 피어날 꽃송이를 향해
두렵고 설레는 눈보라를 헤친다

다시라는 말은 없다
언제나 당찬 시작이고 어느 때나 곧게 뻗친다
나는 너를 빤히 보고
너는 나를 못 보는 까만 선팅의 시대에서
무표정의 손가락 하나로 카드 긁고 답을 내지만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루 첫머리를 마주할 수 있어
지난날이 그리워도 새 아침을 맞는 눈길은 민첩하다
날은 언제나 초조한 날갯짓으로 날을 휘젓고 날을 보낸다

말없이 가물거리며 다가서는 시선을 차단한 날엔
굳은 맹세로 늘어선 숫자의 행렬 앞에서 동그라미를 치고
2024 깃발을 하늘 높이 치켜든다
어제는 이미 낡아버린 기억뿐, 타성의 벽을 깨고
오늘이 따라잡는 내일의 숫자를 하나하나 꼽아보며
바람이 벅차도 새 열쇠가 따는 희망의 심줄을 곽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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