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이는 고마움
고개를 숙이는 고마움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3.11.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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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고 아들은 울상을 짓고 앉아있다. 물을 빼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인다고 약장을 뒤집어 놓고 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아프냐고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문다. 내 작은 아픔은 언제든 가장 큰 아픔으로 여기는 게 당연한 것을 격고도 실수를 할 뻔 했다.

지난번 나는 똑바로 앉아서 눈높이의 벽을 바라보며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다. 시간이 나서 그렇게 쉬고 있는 게 아니라 규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지도 말고 세수도 수건으로 닦으라고 한다. 머리도 일주일정도 감지 말고 꼭 감고 싶으면 미용실 가서 감으란다.

친절한 의사는 마치 잘 아는 문제를 자상하게 알려주는 과외 선생님 같았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어느 곳이든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서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어지러워서 쓸어 질 것 같았다.

출근하는 남편을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씽크대를 붙잡고 다니면서 아침상을 차렸다. 남편이 출근하고 다시 누웠다. 병원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해서다. 걸어가도 십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택시를 불러 타고 병원으로 갔다.

난 서있을 수가 없는데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체해서 그렇다고 링거에 약을 타서 맞고 가라고 한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링거를 다 맞고 남편을 오라해서 집으로 왔다.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는 의사 말을 믿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도 어제와 달라지지를 않았다. 누워서 생각을 하니 친구가 이석증으로 고생할 때가 떠올랐다. 잠시 직장을 쉬고 있는 아들을 불러서 청주로 갔다. 마침 토요일이라 원하던 병원은 예약하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길 건너 맞은편에 이비인후과라는 간판이 보이 길래 무조건 갔다.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다행이다 싶어 진료를 받았는데 너무 엉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며칠 간 그럴 거라는 의사 말을 듣고 집으로 왔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믿었지만 똑 같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처음과 같았다.

불행하게도 명절 밑이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들에게 마트에서 살 것들은 알려주고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가깝게 사는 동생의 손을 빌어 음식을 대충했다.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하면 쓸어 질 것 같아서 움직이기가 곤란하였다.

말로 알려주고 있는 자신이 어이없었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누워 있거나 똑바로 앉아 있는 것 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게 이렇게 불편한 줄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 숙일 수 있는 게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해도 다 알 수 없다.딸이 다른 병원을 예약해 줘서 치료를 받으러 갔다. 검사를 몇 가지하더니 이석증이 맞는데 너무 심하다고 하루 입원을 하라고 한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기에 의사의 처방대로 입원을 했다.

처치 실에서 기계로 치료를 하고 입원실로 갔다. 링거를 몇 개씩 꼽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확실히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이 나아진 상태로 퇴원을 했다. 목에는 움직이지 못하게 목 깁스를 하고 왔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잠도 똑바로 누워 자야 되니 편히 잠들 수가 없고 선잠을 자게 되었다. 밥조차도 먹여줘야 먹을 수 있었다. 참으로 황당했다. 단지 고개를 숙이지 못 하는 것밖에 없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몹시 놀랐다. 일주일이 지나자 목 깁스도 풀고, 고개를 숙여도 되고 옆으로도 잘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꾸 고개를 숙여보고 옆으로도 누워본다. 신나하는 엄마를 위해 맛난 것을 먹으러 가잔다. 좋아하는 샤브샤브를 마음 것 내가 알아서 먹게 된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너무 좋아하는 엄마를 보고 아이들은 그렇게 좋으냐고 의아해 한다.

이런 아픔을 격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다. 작은 것 하나에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언제 가져보았던가. 살면서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지 않고 원망만 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돌이켜보니 세상에 고맙지 않은 것이 단 한 개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평생 혹사만 시키지 말고 잘 달래며 살아야할 소중한 몸이다. 우리 몸은 좋은 일이나 행복한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나쁜 기억들은 빨리 잊는 자동정화시설이 잘 되어있다.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부터라도 안 좋은 기억들을 억지로 지우려하지 말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고쳐보려 한다. 악몽의 일주일은 내게 세상을 뒤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하루를 잘 견딘 자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해 본다. 아주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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