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밭에서
고추 밭에서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3.09.0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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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준란 수필가.
지준란 수필가.

올해는 유난히 장맛비가 많이 왔다. 장맛비로 인해 안타깝게도 인명피해도 많고 수해로 농작물 피해도 많은 여름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주말 농장을 시작 한 지는 7년이 넘은 듯싶다. 시골에 전원 주택을 짓고 싶다는 남편 뜻에 땅을 구입했고, 처음엔 400평 정도의 농사는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쉬운 것이 아님을 요즘 들어 더 느낀다.

평일엔 직장 다니고 주말이면 밭에 와서 생활하면서 농작물을 돌보는데도 고추와 참깨는 병을 한다. 약을 쳐도 눈에 띄는 탄저병이 이곳 저곳에서 보인다. 하루는 비 오는 날 고추 밭에서 탄저병 걸린 고추를 따는데 친정 아버지가 생각 났다.

우리 아버진 농부였다. 잎담배 농사도 하고 누에도 키우고 고추도 많이 심어서 육남매를 가르치셨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전에는 농작물이 병에 걸려도 요즘처럼 농약의 효과가 좋지 못해 피해도 많았을 거라 가슴앓이를 많이 하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됐을 때 밤이면 친구네 집에 가서 눈치 보면서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존심도 상하고 부러운 마음에 아버지께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자식이 사달라는 것을 마음대로 사주지 못했던 아버지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렇게 내가 투정 할 때면 저 건너 밭에 가서 맴돌던 아버지가, 오늘 병 걸린 고추를 따면서 문득 생각나고 그립고 보고 싶다.

아버지는 당신이 농사 짓는 게 많이 고단하고 힘드셨는지 딸들은 농사 짓지 않는 도시로 시집을 보내고 싶어 하셨는데, 결국에 나는 도시 생활을 하다가 많지는 않지만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 어릴 적에는 잘 몰랐는데 내가 이렇게 농사를 지어 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어릴 적 투정이 많고 사춘기를 심하게 했던 나는 부모가 되고, 이제는 육십을 바라보는 노년기가 되면서 철이 드는 가 싶다.

고작 400평 정도 밭을 일구면서 내 머리 속에는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때로는 힐링도 되고, 어느 날은 짜증도 나고, 밭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마음이 나를 흔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으면서 잃는 것 보다는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서 기쁘다.

비록 고추도 병을 하고 복숭아도 냉해를 입고 전혀 팔 수 없게 되어 이웃들과 나눔만 하게 된 날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우린 직장 다니며 조금 한 것인데, 농업을 전적으로 생업삼아 하는 분들은 얼마나 더 마음이 먹먹할지, 생각하니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친정 아버지가 더 생각 난 듯 하다. 자식 때문에 힘듦과 고단함을 참고 사신 내 아버지는 참 훌륭했음을 농사의 실패를 경험하며 깨닫는다. 그래도 우린 아직 젊고 건강하니 내일을 위하여 더 도전할 수 있다. 그런 우리에게 내년에는 더 밝지 않을까 힘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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