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몫을 다하는 일
제 몫을 다하는 일
행복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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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3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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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지난 주말 전부터 쏟아진 비로 도로 곳곳이 파이고, 산사태와 강물이 범람해 많은 수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내가 사는 충북 지역의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소식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숨진 이의 사연이 전해지고, 오열하는 유가족과 멍하니 곁을 지키는 지인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지만, 눈앞에 선하다.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의 손을 놓지 않은 의인을 보면서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숙연해진다.  수해 지역 곳곳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수고로운 일인지 새삼 느낀다.

지난번 대학원에서 중국으로 학술대회를 갔을 때도 그런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한 걸음 뒤에서 살펴보니 지금까지는 몰랐던 부분이 보였다. 지난해 1년여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내던 선배와 4박 5일 동안 룸메이트를 하면서 동행자가 되었다.

이번 학기에 논문 심사를 앞둔 그녀는 국제학술위원장을 맡아 학술대회 준비를 진행했다. 논문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중국 비자발급을 받기까지 동분서주하며 위기를 넘기고 제 역할을 다했다. 주변을 살필 줄 아는 고운 심성과 강직한 성품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함께 한 분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소리없이 해냈다. 중국 유학생의 지지자 역을 해주시는 J 교수님은 이번 학회가 있기까지 일선에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추진력 있게 전체를 이끌어 주셨다.

하루 뒤에 합류하신 교수님은 중국어에 능통해서 J 교수님의 빈자리를 채워주셨다. 식사시간 때마다 우연히 근처에 앉게 되었는데 본인 식사보다는 일행에게 음식을 설명하고 입맛에 맞는지 되묻느라 정작 본인은 식사를 못 하셨다.

한국에서 함께 간 교수님과 다른 교수님도 일행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셨다. 원우회를 이끄는 회장님과 선배, 후배, 누구나 제 자리에서 퍼즐 맞추듯이 끼워져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중국에서 우리를 안내한 학생들도 그러했다.

일정을 끝까지 안전하게 책임지고 식사 자리에서 넘치도록 음식을 챙기고, 비워진 술잔을 끊임없이 채웠다. 서로에게 미루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제 자리에서 티 내지 않고 하는 행동은 불협화음 없는 동행이 되었다.

창문을 흔드는 빗소리에 뒤섞여 호우주의보 알림음이 울린다. 어두워진 하늘보다 짙은 우울감이 밀려든다. 그날 지하차도에 물이 차기 전 미리 인지하고 조치하는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생과 사의 순간은 바뀔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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