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오로라
내 삶의 오로라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2.08.2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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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이정희 수필가.

내가 꼭 한 번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오로라다. 가끔 인터넷을 열어서 사진을 꺼내 보곤 하는데 자연의 최고 비경 중의 하나라면 오로라가 아닐까 싶다. 수많은 빛의 입자가 허공을 오르내릴 때는 환상이다. 직접 보면 더 실감이 나겠지만, 때로는 풍경보다 사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내게도 오로라에 대한 향수는 있었다. 어릴 적, 비가 온 뒤 유리창 모서리에 떠오르던 빛의 향연이 생각났다. 명멸하는 빛 속에 붉은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노을처럼 선홍색 불못이 출렁이는가 하면 푸른 원형의 고리가 허공을 선회한다. 보랏빛 띠가 눈앞을 맴도는 순간 거대한 스펙트럼의 잔상이 빛의 폭풍으로 휘몰아치기도 한다.

밤에는 꿈속에서도 나타났다. 나선형 오로라는 초록색 달팽이처럼 화려했다. 눈썰매를 끄는 사람들 위로 자작나무 숲과 눈 쌓인 골짜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꿈속 같은 풍경이면서도 꿈속은 아닌 북극 지방의 판타지.

오로라는 새벽을 뜻한다. 녹색의 분수가 지평선 끝까지 뿜어지기도 하고 빛의 파도가 몰려갈 때는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듯했다. 하늘하늘한 구름이 말려 올라갈 때는 꽃무늬 고운 커튼이 펄럭이듯 또는 하늘대는 야회복처럼 예쁘다.

우주가 만든 최고의 판타지는 태양이 지구에 보내는 빛의 메시지였다. 태양의 폭발로 발생한 플라즈마(초고온 기체)는 대부분 지구의 자기장 밖으로 흩어진다. 지구도 일종의 자석이라서 그 중 남은 빛의 입자가 북극과 남극으로 모이고 그것이 대기 중의 공기와 충돌하면서 거대한 빛의 향연을 펼친다.

어릴 때는 그저 신비한 느낌이었으나 지금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더 집착한다. 황록색, 붉은색, 오렌지색, 푸른색, 보라색 등의 산뜻한 빛깔은 지구상의 어떤 색소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극지방에서 자주 관찰되는 것도 대기권에 들어오지 못한 빛의 입자가 자력선을 따라서 공기와 부딪치는 까닭이다.

최근 캐나다 옐로나이프에는 ‘오로라 빌리지’라고 하여 편하게 관측할 수 있는 시설이 많다. 최상의 관측을 위해 전망이 좋은 곳에 설치해 놓고 가로등이나 네온사인 등 인공적인 빛까지 차단했다고 한다. 기다리면서 쉴 수 있는 오두막과 '오로라 알람'도 있어 연락이 오면 곧 바로 달려가서 보곤 한다니 환상이 따로 없다.

가끔 그 곳의 현지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우리는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것을 아침저녁 노을 보듯이 하겠지. 추울 때는 ℃영하 40까지 내려간다니,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서 비경을 보는 셈이다. 특별히 북유럽과 그린란드 알래스카 등지보다 훨씬 올라간 북위 80° 지역에서 오로라 혼자 빛나고 있을 정경은 신의 영혼이 담겨 있다는 표현 그대로다. 태양에서 먼 극지방일수록 빛과 자연의 예술작품인 오로라가 찬란한 구름으로 밤하늘을 떠다닐 테니 아름다움은 그런 것일까.

나이를 생각하면 필요 이상의 집착이 민망해지지만, 사진을 보며 예의 또 북극으로 떠난다. 직접 가서 보는 것도, 동화 속 주인공처럼 자작나무 숲을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순록과 눈썰매도 없으나 사진만 봐도 신의 영혼처럼 느껴진다. 내 인생의 오로라 또한 춥고 썰렁할 때 생길 거라면 극지방의 날씨도 감수해야 하리. 어릴 적 눈 감으면 보이던 신기루야말로 아름답고 찬란한 오로라의 효시였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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