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발견
치매의 발견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10.2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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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남편의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수로 물에 빠트렸다고 한다. 배터리를 분리해서 물기를 말린 다음 켜야 되는데 그냥 켠 것이 화근이었다. 같은 종류만 고집해서 수리가 되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새 것으로 바꿔야 할 형편이었다. 대리점을 방문해보니 예상대로 수리가 불가능 하다고 했다.

최대한 비슷한 모델로 교체를 해달라며 앉아 있는데 대리점 직원이 남편의 번호를 물었다. “네? 저기..." 순간 번호가 떠오르지 않았다. 단축키만 누르고 통화를 하다 보니 알고 있었던 번호인데도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서 확인하고 번호를 가르쳐 주며 직원을 바라보는데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남편의 번호도 모르는 무심한 사람이라 생각할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TV를 보다보면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도 자기 노래가 아니면 가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수라면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지만 노래방 기계를 끄고 부르면 끝까지 부르는 가수가 거의 없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고등학생들의 퀴즈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퀴즈 문제 중 치매에 대한 퀴즈가 있었다. 친한 사람의 전화번호도 기억 못하고 노래방 반주 화면의 가사 자막이 없으면 부를 줄 아는 노래가 없으며, 계산 능력이 자꾸 떨어지는 증상이 어떤 치매냐는 것이 문제였다.

내 상식으로는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밖에 없는데 뭐가 또 있는지 궁금했다. 답은 디지털 치매였다. 인터넷의 발달로 저장된 번호를 찾거나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를 꺼내 보기만 하면 된다. 복잡한 일들을 굳이 외우지 않아도 지금하고 있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라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서울에 사는 친척집을 찾아갔을 때가 40년 전인 중학교 때로 기억 된다. 주소 한 장을 들고 직행버스를 타고 가서 또 몇 번의 시내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묻고, 묻기를 반복했지만 모두 귀찮은 내색 없이 친절하게 알려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지금 그렇게 다닌다면 무모하다는 소릴 들었을 것 같다.

요즘은 네비게이션만 있으면 목적지도 알려주고 걸리는 시간까지도 가르쳐준다. 지도를 펼쳐 볼 일도, 주변에 큰 건물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도 없다. 또 누구에게 물어봐도 자세히 가르쳐 주는 사람도 드물다. 혼자 알아서 해결하다보니 디지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불편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지만 머리는 점점 단순해지길 바라는 것 같다. 건망증이 심한 나는 가끔씩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몇 사람에게 연락을 할 수 있을지 손꼽아 보기도 한다. 자막 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지, 책을 덮고도 낭송할 수 있는 시가 있을까?, 적은 수의 암산을 계산기 없이 할 수 있는지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에 정확하게 답변 할 수가 없다.

많이 생각하고 읽고, 쓰는 것이 예방법이라는데, 쉽지가 않다.균형 있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로움이 필요하다. 사람은 그 시대에 맞게 적응을 하며 살게 되어있다. 모르면 찾아보고 또 물어보며 세상과 발맞춰가며 누구를 탓하지 않는 게 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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