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일거리
소일거리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04.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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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조카딸이 묻는다.“이모 꽃은 왜 이뻐?" 잠시 말문이 막힌다. 아~ 그건 꽃의 할 일이기 때문이야 너는 학교 다니며 공부하는 게 할일이듯이 꽃은 예쁜 게 꽃의 할일이야. “아~ 그렇구나! "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외출하려고 나서는데 이웃집 할머니를 만났다. '어르신 뭐 하세요?“ "풀 뽑어유“. 왜 힘들게 하세요? 관리하시는 분들이 할 텐데 하자 "소일거리로 하는 겨' 한다. 이 풀들도 겨울을 지나 자기 할 일을 하려고 땅을 비집고 나왔지만 꽃밭에서는 잡초라 뽑아야 된다며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잡초를 뽑는다.

우리센터에도 어르신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를 하러 오신다. 몸도 불편해 보이는데 쉬지 않고 왜 나오시느냐고 묻자 소일거리라고 한다. 용돈도 벌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즐겁다고 한다.

아직은 그렇게 피부에 와 닿을 나이는 아니지만 친정엄마를 봐도 그렇다. 대수술을 두 번씩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텃밭을 가꾼다. 한고랑 나가는데 몇 번씩 쉬어야 하지만 할 일이 있다는 게 좋아서 하신단다. 돈벌이가 되지는 않지만 가끔씩 오는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재미는 돈 주고도 못 산다고 하신다.

도시에 사는 노인들은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어서 못 한다. 경로당이나 공원에 모여앉아 이야기하다 뿔뿔이 흩어지는 게 일상이다. 그나마 요즘처럼 코로나19 때문에 함부로 모이지도 못 하니까 할 일없이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젊어서는 자식 키우고 집안 살림하느라 힘들었었다.

그래서 노년이 되면 보상 받듯이 즐겁고 외롭지 않게 지내길 바라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농촌 할머니 할아버지가 불쌍했다. 작은 집 할머니는 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등이 굽었는데도 하루도 빠짐없이 들로 일을 하러 나가셨다. 우리 할아버지도 지게를 지고 나무도 해 오고 소 풀도 베어 오셨다.

집에 오면 힘드신지 사랑방에 누워 계시곤 하셨다.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는 농촌 어르신들이 어린 마음에도 안쓰러웠다. 텔레비전에서 보면 깨끗한 옷차림의 도시 노인들이 공원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나이 들어 농촌에 사는 것은 불행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맥없이 앉아 있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즐겁게 산다. 설문 조사를 통하지 않더라도 나이 들수록 소일거리가 일상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학교 앞에서 등, 하교 지도를 하는 노인들이 측은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나도 나이가 들면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힘닿는 데 까지 찾아서 하고 싶다. 여러모로 생각해 봐도 노년은 농촌에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작은 일이라도  늘 할 일이 있다. 내 텃밭, 옆집 텃밭을 가리지 않고 들며날며 손을 보아 주어 새싹들을 키운다.

잠시도 심심하거나 외로울 사이가 없다는 말이 행복하다는 말보다 더 듣기 좋다. 노인들에게 소일거리는 비타민 같은 존재다. 밭고랑 일구다 잠시 쉬는 친정엄마나, 화단에서 잡초를 뽑던 이웃집 할머니는 오늘 비타민 한 알을 이미 드신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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