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소원
반딧불이의 소원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11.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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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피부 알레르기 환자가 급증하여 피부과에 환자가 몰린다는 소식이다. 80년대 우리 아이들 키울 때에는 알레르기라는 말이 흔히 쓰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은 피부뿐만 아니라 알레르기성 비염환자도 많다.

원인은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tv환경프로에서 보니 딸의 알레르기 때문에 부모가 산속에서 황토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살아보니 자연스레 증상이 없어지고 덕분에 부모들도 건강해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냥 산속에서 평생을 살수도 없는데 걱정이라는 부모 말에 공감이 갔다.

딸도 피부가 예민해서 그 프로를 보고 산에 가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진담을 섞어 말했던 기억이 난다. 환경을 말하면 반딧불이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보기가 쉽지 않지만 6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시골 친구들은 반딧불이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오빠나 남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난 늘 부러웠다. 깜깜한 밤에 반딧불을 보고 싶어 이웃집 오빠나 남동생들 틈에서 눈치를 보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신기해서 손바닥위에 올려보고 싶지만 외톨이인 나는 그냥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손바닥에 반딧불이를 올려주던 코흘리개 친구 남동생은 어느 하늘 아래서 나처럼 반딧불이 추억하고 있을까? 이제는 내 고향 뜰에도 반딧불이가 살았던 적이 있었나싶게 공장굴뚝과 쌩쌩 달리는 자동차뿐이다.

무주반딧불이 축제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밤이 오길 기다렸다. 좀 넓은 논두렁을 지나 좁아지는 길목부터 신기하게도 별빛만큼이나 반짝이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청정 마을이 있다는 게 반가웠다.

깜깜한 속에서 빛을 발하던 그 모습을 자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몇 년 전에 코타키나발루로 여행 간 적이 있다. 여행지를 선택할 때 반딧불이를 너무 앞세워 홍보를 했다. 무엇이든지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이 크기 마련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여러 곳을 구경하면서도 반딧불이를 얘기했다. 어두워지길 기다렸다가 웨스턴 강줄기를 따라서 맹그로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 곳이 반딧불이가 가장 많은 곳이라 한다. 어릴 적 추억을 소환 할 수 있을지 몰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믐이라야 하고 비가 내리지 말고 그리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단다. 가이드는 못 보게 되면 본인 책임이 아니라는 듯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저 운이 좋길 바랐다. 고온다습한 날씨에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었지만 참아냈다.

목 좋은 곳을 잡기위해 선장은 작은 배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반딧불이 볼 욕심에 모두 참고 견디었다. 잠시 후 우리 앞에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작은 전구를 수없이 달아놓은 것 같은 반짝임이 보였다. 반딧불이 한 마리 한 마리가 날아올라  형형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었다.  모두 넋을 잃고 말이 없었다.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 때문이기도 했지만 감동의 전율이 말을 잇지 못 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이렇게 청정한 지역이 있다니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몹시 부러웠다. 얼마 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지금은  관광객 수를 제한한다는 코타키나발루 소식을 들었다.

수익보다 자연을 생각하는 그들의 정책이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날아온 반딧불이를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날아 다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그 곳을 다 쌀 수 있는 보자기가 있으면 정말 싸가지고 오고 싶었다.

청정함을 대표하는 반딧불이가 어느 논에서도 날아다녀 신기하지도 않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반딧불이를 빌어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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