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는 사람
화장하는 사람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09.02 15:5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동생네 남매가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조카딸은 장난감 화장품세트를 꺼내놓고 공주님처럼 꾸민다며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볼터치도 하면서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있다. 옆에서 두 살 어린 남동생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저도 화장을 하고 싶다며 떼를 쓰고 있다.

조카딸은 “넌 남자니까 화장 하는 거 아니야" 히는 게 아닌가,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당황했다. 초등학교 2학년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은 아니었다. 조카딸은 어른들이 무의식중에 한 얘기를 귀담아 들은 모양이다. 남자 여자 그렇게 구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자기 물건을 아껴서 그런 건지 요지부동이다. 동생의 울음으로 일단락은 지어졌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파마를 하겠다고 할 때가 생각난다. 남자가 무슨 파마냐고 난 극구 말렸다. 제 뜻대로 못한 아들과 한참 동안 냉전을 치른 지 십년이 되었다. 지금은 반대로 파마가 다 풀렸는데 왜 안 하느냐고 내가 묻곤 한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 같다. 이제는 좀 바뀌어야 된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들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한다. 생각해 보면 남녀를 구분진 것도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심했다.

아버지와 아들만을 귀하게 여긴 것이 엄마였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다 보니 너무도 익숙해졌다. 그래도 교육의 힘 덕분인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서인지 남녀평등에 파란 신호등이 켜져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서서 여성 운동하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요즘은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도 많이 출간되고 영화도 한몫을 하면서 사회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있다. 얼마 전에 “평등은 개뿔"이란 책을 읽었다.

남녀가 같은 머리를 자르는데도 여자가 긴 머리를 자르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며 수근 거린다. 남자가 원피스를 입고 지나가면 모두 처다 보며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한마디씩 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또 화장한 남자가 지나가면 화장한 사람이 지나가내라고 말하라는데  몇 사람이나 그럴지 궁금하다. 연예인도 아닌데 남자가 화장을 하고 다닌다며 속으로 한마디 했을 것 같다. 꼭 책을 보지 않더라도 뉴스라는 매체를 통해 자주 보고 듣는다.

최고의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남자들의 바르지 못한 행동과 여성 비하 발언은 멈춰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건 단번에 해결되는 일은 없다. 그래서 꾸준하게 앞서서 일하는 여성들이 있기에 감사하고 든든하다.

우리 곁에서도 묵묵하게 여성을 대표해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월급을 받으며 하는 일이 아니기에 더 값지고 빛이 난다. 난 언제나 그녀를 믿고 지지한다.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조카딸의 의식개혁인데 만만치가 않다. 요즘 아이들이 똑똑해도 너무 똑똑하다. 얘기를 하다보면 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내말이 통해야 할 텐데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jgw 2020-09-05 17:57:40
생각 전환을 하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