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성애
어떤 모성애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07.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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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웅 수필가.
서민웅 수필가.

서대문 안산(鞍山)에 올랐다. 어디선지 장끼가 ‘꺽꺽 푸드덕’ 홰를 쳤다. 이 꺽꺽 푸드덕 이란 단어는 늦깎이로 국어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장끼가 울며 홰치는 소리로 몇 가지 비슷한 발음 중에서 표준어 선택 기준에 따라 이 단어를 표준어로 고른 것이다.

이 단어를 보고 참 희한한 말도 표준어로 정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꺽꺽 푸드덕 보다는 꺽꺽 푸드득이 더 장끼가 울며 홰치는 소리에 적당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내 고향 충북 음성에서 자랄 때는 ‘꿩꿩 꿔엉’으로 나타내곤 했었다.

어떻든 이 단어를 생각하면 단번에 육칠십 년이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의 와중에 초등학교 다닐 때다. 들판을 헤치며 꿩알을 찾던 그때의 늦봄, 그때가 엊그제 일처럼 머릿속에 선하게 그대로 남아 있다. 전쟁의 참상으로 먹을거리, 입을 거리라고는 없이 여름에는 맨발로 팬티 하나만 걸치고 살 때이었으니 야산의 풀숲에서 꿩알을 발견하는 것은 몇 년 동안 회자할 만한 횡재이자 에피소드 거리였다.

우리 동무들은 하학길이면 멀쩡한 길을 놔두고 산판 들판으로 가로질러 오솔길로 다녔다. 딱히 오솔길이 이어진 곳이 아니라 산자락이나 들판을 가로질러 다니는 것이었다. 나무라곤 한그루도 없는 민둥산이었으니 소년들의 가는 길에 거칠 것이 없었다.

어찌 된 일이었던지 그날은 나 혼자 산자락을 누비며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오솔길과 멀지 않은 곳에 꿩이 집을 지을 만한 수풀 푸데기가 눈에 띄었다. 혹시, 저 안에 꿩의 집이! 조심 또 조심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갔다. 푸데기 안이 들여다보일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까투리가 그 안에 앉아서 동그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발짝만 움직이면 꿩이 날아오를 것 같아 그 자리에 발이 딱 멈춰졌다. 그리고는 그놈과 눈싸움을 시작했다. 꿩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눈망울만 굴리며 나를 응시하고 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눈만 쳐다보고 서 있었다.

꿩알만 찾아도 대박인데 까투리까지 잡을 수 있게 되었다니. 눈싸움 중에 까투리가 날아가 버릴까봐 결단을 내렸다. 발짝을 띨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단번에 날라서 꿩을 덮치자. 속으로 침을 한번 삼키고 까투리를 향하여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놈이 내 두 손안에 잡혔다. 아, 잡았다! 하는 순간 까투리가 요동을 치며 화닥닥 하고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눈을 떴을 때의 그 허전함이란….

어미 꿩이 날아간 자리엔 열 개가 넘는 꿩알이 어미의 체온을 간직한 채 남아 있고, 두어 개는 깨져 있었다. 깨진 꿩알은 핏줄이 엉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미가 나를 빤히 노려보듯 쳐다보면서도 날아가지 않은 것은 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건 모성애였다. 그 모성애가 사람보다 못하다 할 수 있으랴.

내 고향에서는 핏줄이 엉킨 품던 알은 먹지 않는다. 나는 다른 꿩알도 마찬가지일거라 알을 그대로 두고, 어미가 남은 알이라도 품어서 꿩의 병아리로 부화하길 바랐다. 그러나 어미 까투리는 그 수풀 푸데기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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