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에서의 시간
하늘 위에서의 시간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0.02.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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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다른 때보다 인천공항은 한산했다. 코로나바이러스때문인지 마스크와 장갑 등을 대부분 착용했다. 사전에 체크인을 해서 수속을 일찍 마치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스탄불까지 비행시간은 열 두 시간 정도이다. 몇 번의 유럽여행 경험으로 공항패션은 편한 옷의 트레이닝 차림에 목베개를 배낭에 매달았다.

불편한 좌석에서 오래 견디는 요령을 알고 난 후 오히려 비행기안에서의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오롯이 혼자 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편인데 특히 기내식은 기다려지고 마음에 드는 음식 중 하나이다.

짧은 비행에서는 맛볼 수 없다. 이륙 후 30여분 쯤 지나서 앞에서부터 식사 서비스가 시작되고 있는 움직임이 보였다. 귀를 대고 어떤 메뉴가 있는 지 살펴본다.

내 자리까지 오기 전에 두 가지 메뉴 중에서 한 가지를 마음속으로 정한다. 첫 음식으로 비빔밥을 선택했다. 따끈한 햇반과 고급스러운 도자기에 가지런히 담긴 색깔별의 채소가 군침을 돌게 했다.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서 먹는 비빔밥은 최고였다. 옆 자리에 외국분도 고추장을 듬뿍 넣어서 비빔밥을 깨끗이 비웠다. 디저트로 커피까지 마시고 잠깐 잠이 들었다.

요즘 갱년기 증상으로 잠을 푹 잘 수 없었는데 짧지만 달게 잤다. 기내에 설치된 모니터로 영화를 검색했다.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영화를 볼 여유가 없는데 이 기회에 실컷 호사를 누린다.

최신작은 아니더라도 영화 몇 편을 보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가고 나름 부족한 문화적 역량을 채운다. 영화를 보면서 가끔 맥주 한 잔의 서비스를 청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중에 착륙 시간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나오면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볼 영화를 미리 선정해 두기도 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여행을 취소해야 할지 고민 하다가 최악의 상황임에도 무리해서 떠났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렘이 더 큰 행복인데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땅 위에서 멀어질수록 조금씩 편해졌다. 하늘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을 한다.

그 중에 하나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비행기의 위력을 실감하며 구름을 본다. 복잡한 심경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다.

벗어난다고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멀리 떨어지면 타인의 눈으로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위에서 무중력의 평온함을 느낀다.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 위해 나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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