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배움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64세 만학도 박이근씨 충청대 졸업
  • 음성뉴스
  • 승인 2010.03.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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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학도 박이근씨

“배움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늦었다는 생각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배움에 당당히 도전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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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열린 충청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이순을 넘긴 나이에 사회복지 전문학사 학위를 받은 박이근씨(64·음성군 대소면).
 

대소면에서 충북자원 대표로 재직중인 그는 지난 60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했다가 47년만인 2007년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한해에 중·고등 검정시험을 마쳤다.
 

교복입은 친구들이 한 없이 부러웠던 그는 공부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이순의 나이가 된 2007년 검정고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첫 시험에서 합격한 뒤 자신감이 생겨 바로 고등학교 과정에 도전, 독하게 공부한 결과 3개월 만에 당당히 합격한 후 충청대학 사회복지과 야간 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매일 음성에서 청주를 오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난 2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강의를 수강하는 열의와 정성으로 고생 끝에 대학을 졸업하게 됐다.

매학기 올A학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2년간 장학금을 받은 박 대표는 못 배운 한이 있고 특히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음성군 기초의원 다선거구 출마 당시 학벌 콤플렉스로 좌절하는 아픔을 겪고 난 후 대학을 졸업해야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오늘이 있게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자식 또래의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일이 즐거웠다. 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젊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항상 인터넷 등을 못 따라가 강의 자료 수집 등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친인척들과 단절하여 야박하다는 말을 듣는 등 일부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주위의 이해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고 그동안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4살 때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고 했던 것이 도리어 화가 돼 부모를 여인 박이근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소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 전선에 뛰어 들었다. 바로 서울로 상경하여 어린나이에 온갖 일을 다 해보며 고생을 했다. 신문배달, 구두닦이 등 갖은 고생으로 약간의 돈을 벌어 40대 초반인 지난 88년 귀향해 사업을 시작했다. 근검절약하며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사업에 성공하게 됐다.
 

박 대표는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대소면주민자치위원장, 대소초등학교학교운영위원장, 대소면지역개발위원장, 대소라이온스클럽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화합에 이바지 하여 왔을 뿐 아니라 매년 소년소녀가장돕기 등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성금과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한 독지가로 알려져 있다.

평소 궁핍하지 않을 때 남을 돕겠다는 신조를 갖고 있던 그는 개인 소유의 농지 900여평을 부녀회에 위탁, 경작 이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는 등 나눔의 삶을 하고 있다.
 

나이를 먹을 수록 할 일이 많다는 박대표. 그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기상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나서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복지시설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그는 올 한해는 지역의 사회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 뒤 내년에 다시 충청대학의 4년제 학사학위 과정인 전공심화과정에 입학해 공부를 지속할 계획이다.
 

박대표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3세 때 객지로 나가 신문 배달부터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생활전선에서 일했으나 항상 배우에 대한 열망은 있었다”며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감격에 겨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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