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하루
어떤 하루
행복의 뜨락
  • 강희진
  • 승인 2015.06.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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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진 수필가.

안경을 잃어버린 것은 친정에 모임이 있던 날 밤이었다. 모였다 하면 그 동안 쌓인 얘기로 밤 새는 줄도 모른다. 그 때도 예의 새벽녘이 되어서야 얘기 장단이 끝났다.

밤이 깊어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 와 보니 안경이 없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순간 난감했다.기억에 분명 거실 식탁 위에 벗어 놓고 씻고 들어온 것 같은데 없어진 것이다. 우왕좌왕 찾다 보니 언니들도 알게 되었고 마침내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거실과 화장실 안방 이불까지 들추며 법석을 떨었건만 안경은 보이지 않았다. 집이라면 여분의 안경이 있으니 그것을 쓰고 찾으면 되겠지만 언니네 집이라 그럴 수도 없고 잠자코 있자니 울화만 치밀었다.

곡절 끝에 안경을 찾은 것은 형부가 들어오신 다음이었다. 안경이 없어지기 전에 외출한 만큼 사태의 추이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무심코 화장실에 갔다가 선반 위의 안경을 보았다는 것이다. 언니들과 내가 몇 번씩 들어가 찾은 자리다.

변기 속까지 들여다 본 큰언니는 귀신이 곡할 일이라며 웃었으나 생각하니 화장실에 갈 때는 쓰지 않았다고 우긴 내 탓도 있었다. 결국 내 말을 믿고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건성 찾았을 게 아닌가 싶고 반면 형부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들어갔기에 쉽게 찾아 낸 셈이다.

안경을 쓰고 나니 그제야 눈앞이 편해지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말을 곧이듣고 없을 거라는 전제하에 찾을 때는 보이지 않던 안경이 아무런 상황도 모르고 찾은 형부의 눈에 띈 것은 편견이라고 볼 수 있는 깊은 뜻이 잠재된 것 같다.

요즘 본 텔레비젼의 '복면가왕'이란 프로그램 때문이다. 기존의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데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편견 없이 노래를 듣는 형식이다. 곡이 끝나고 그 다음 복면을 벗으면 출연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저 가수가 노래를 그렇게 잘했나 하면서 저력을 새삼스럽게 발견한 듯 놀라워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편견은 거의 주관적인 견해에서 나온다. 어떤 특정인에 대해 시시콜콜 다 알고 났을 때 보는 것과 사전 지식 없이 보는 것은 천양지차로 다를 수밖에 없으니 편견은 때로 놀라운 결과를 야기한다. 그로 인해 좋은 평가가 나올 때는 여파가 덜하지만 나쁜 결과가 나올 때를 생각하면 자중할 일이다.

안경을 찾을 동안 벌어진 해프닝이 다시금 떠오른다. 거짓말처럼 쉽게 찾아 낸 것은 결국 편견이라는 베일 때문이었다. 편견은 곧 커튼 같은 것이었을까. 커튼을 치고 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전혀 다른 창밖 풍경을 생각한 것이다.

아늑한 분위기를 위해 치기는 해도 가끔 정확한 사물의 관찰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가령 나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인해 상처 받은 누군가가 있음을 생각했다. 스스로의 판단이 잘못인 줄 모르고 진실인 것처럼 누군가를 호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리한 시선과 공정한 안목은 나름대로 식견을 갖출 때라야 나오는 거지만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편견이 무책임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 반드시 갖춰야 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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