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같아요
엄마랑 같아요
행복의 뜨락
  • 이명순
  • 승인 2015.02.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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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순 수필가.

현우 엄마가 전화를 했다. 반갑게 안부를 나누고 나니 고구마를 한 박스 가져 가라고 한다. 매년 고구마를 캘 때마다 전화를 하는 현우 엄마는 결혼 이주 여성인데 몇 년 전 한국어 방문 지도를 하며 처음 만났다. 이 후로 공부가 끝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고구마는 물론이고 각종 농산물을 나눠 준다.

직접 농사를 지으니 준다고는 하지만 그리 마음 먹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늘 고마운 마음이 크다. 현우 엄마는 사 년 전 겨울 한국에 왔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베트남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어가 어설퍼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눈치도 있고 한국어 공부에 대한 열의도 있어서 빠른 시간 내 한국어를 터득한 편이다.

어느 정도 한국어가 익숙해진 후로는 빠르게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갔다. 어떤 일이든 남편보다 더 적극적인 편이었고 집 안의 대소사도 한국 여성보다 더 수월하게 적응한 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농사 일도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집안 내 제사나 한식, 벌초는 물론이고 문중 행사와 동네 행사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현우 엄마가 사는 마을은 여느 마을처럼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고 동네 사시는 분들은 거의 노인 분들이다. 때문에 현우 엄마는 동네에서 제일 젊은 새댁이었다. 하지만 붙임성이 좋아 동네 어르신들과도 잘 지냈다. 하지만 현우 엄마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임신 7개월차에 유산을 했었고 매년 겨울이면 추운 날씨 때문에 감기를 달고 살았다.

또한 베트남에 두고 온 자녀를 중도 입국 시키느라 각종 서류를 준비하며 마음 고생도 많았다. 남편은 매우 착한 편인데 조금의 장애가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모든 일처리를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도 입국 자녀를 남편 호적에 올리는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관련 기관에 수없이 전화를 하고 서울로 청주로 다니며 서류를 준비하는 야무진 성격도 보였다. 부부간의 정도 깊은 편이었다. 아주 가끔씩은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사소한 다툼은 있었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남편과 함께 시장도 가고 다시 활기찬 목소리로 안부 전화도 한다.

지난 가을에는 지나는 길에 잠깐 들렸더니 마당에 큰 솥을 걸고 장작불을 때며 옥수수를 찌고 있었다. 우물가에는 고추장아찌와 고추 부각을 한다며 풋고추를 한 바구니 따다 놓았고 고춧잎도 바구니 가득 씻어 놓았다.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시골 살림을 척척 해내는 그녀의 모습이 새삼 경이로웠다. 옥수수와 고추, 고춧잎을 한 보따리 담아 주기에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아요. 집에 많아요. 그리고 선생님은 엄마랑 똑 같아요"라고 한다. 난 순간 뭔가로 세게 맞은 듯 가슴이 쿵 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챙겨 주지도 못했는데 그런 말을 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또한 그녀가 내게 내준 마음 한 자락이 너무 고맙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서로의 마음 주고 받기가 같으면 좋겠지만 삶이란게 치밀한 계산속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녀는 받는 마음 보다 주는 마음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나보다 더 빨리 깨달은 것 같다. 작은 마음으로 이어졌지만 나도 그녀의 마음 쉼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아름다운 인연을 지속하고 싶다. 아직도 내 안에는 베트남 친정 엄마하고 똑 같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가 깊은 울림으로 전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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