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의 자화상
20년 후의 자화상
행복의 뜨락
  • 강희진
  • 승인 2015.02.1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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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진 수필가.

엊그제 문학회 모임이 있었다. 다달이 만나 글공부를 하고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들 모임이 20년이나 된 것을 화제로 모두는 철부지 아이들처럼 이런 저런 얘기가 많았다.

회원들은 특별한 기념이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고들 하는 바람에 과연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나 싶어 마음이 착잡했다. 우리 모임은 백일장에 입상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나 역시 20전 갓 서른 나이에 제1회 음성백일장에 입상한 인연으로 돌 지난 둘째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글공부를 했다. 머리에 온통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한번도 빠짐없이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더욱 정겹고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인연들이다. 배불러 함께 공부했던 회원들은 40대 초반들이 되었고 새댁으로 아기를 키우던 회원은 오십을 훌쩍 넘겼다. 그렇게 10여명이 20년을 함께 한 사이라 속속들이 알고 있어 친 자매들처럼 지내고 있다,

자연스레 세월이 주제가 되어 각자들의 감회를 이야기 하는 시간이 되었다. 20년이 뭐 그리 대수랴 했다가 모임 첫해에 낳은 한 회원의 아들이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는 말에 얼핏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갓난아기가 성인이 되는 세월이 20년이었으니 우리는 주름이 자글자글해질 수밖에 없다.

처음 만났을 때 지금의 내 나이이던 회원 두 분은 70대가 되었다. 앞으로 20년을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면 그 분들은 20년 후에는 90대가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100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틀림없이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면서 손가락을 걸었다.

옛날 향수를 얘기하던 터라 다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할 줄 알았더니 나 말고는 대부분 지금 이대로 살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남편과도 익숙해졌고, 시댁 식구들과도 많이 적응이 되었는데 다시 또 그 세월을 살자면 많은 어려움과 혼란이 따를 테니 지금이 가장 행복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돌아오는 길에 왜 나만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무엇 때문에 지난시절이 그리운 걸까. 답을 찾지는 못했으나 젊음의 열정과 패기 그리고 희망 때문이었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지금처럼 안정된 상태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던 만큼 당연한 결과였으나 자칫 고여 있는 물의 평안이 된다면 경계할 일이라고 본다.

현명한 사람들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여기면서 보다나은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절박한 소망과 끝없는 열정 앞에 장벽은 무너지리라. 내일도 오늘처럼 태양은 뜨지만 오늘의 그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 아니 물리적으로는 똑같이 뜬다 해도 시각은 달리 봐야 할 것을 숙지해 본다.

20년은 무엇이든 이룰 만한 세월이다. 흔히들 10년 공부라 하는데 더더욱 곱절인 20년이니 가능하지 못할 게 없다. 그러면서 부끄러웠던 것은 60이 된 한 회원은 음악을 무지 좋아하는데 앞으로 바이올린을 정말 잘 켜고 싶다고 했다.

그 위에 여건만 된다면 집안일 걱정 없이 3년만 혼자 지내면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비쳤는데 지금의 열정이라면 20년 후에는 틀림없이 이룰 것이라 기대해 본다. 열심히 사는 것으로만 노년의 행복을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 마음도 문득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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