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선물
귀한 선물
행복의 뜨락
  • 이명순
  • 승인 2014.11.0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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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순 수필가.

유난히 바빴던 한 학기가 끝났다. 지난 10개월 동안 함께 했던 학습자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학습자들을 맞이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10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도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 잠깐인 듯 빠른 시간이었다. 한 명 한 명 수업을 마무리 하며 작별 인사를 하는데 가슴 한 켠이 뭉클해져 온다.

처음 맞이하는 이별도 아니고 몇 년간 되풀이 되는 순간들인데 이번 학기에는 다른 때 보다 애착이 강했나 보다.

한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은 결혼이주여성들과의 한국어 수업은 방학 기간까지 포함하면 근 일 년간 희로애락의 감정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나는 낯선 나라에서 겪을 제일 큰 어려움 중의 하나인 언어 소통을 돕는다. 그녀들과 어설프게 의사 소통을 시작하며 가족처럼, 친구처럼 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 하는 역할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론 가족간의 불화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다. 외로움이나 우울증 같은 불청객도 함께 해야 한다.

특히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남편도 있고,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 기쁨이 커지지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그녀들과 이제 헤어져야 한다. 학생이든 지도사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일게다.

어설프게 인사를 나누며 시작했는데 이제는 가벼운 농담도 주고 받을 정도로 한국어에 익숙해진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나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고마운 마음도 크다.

그동안 고마웠다며 선물로 작은 초콜릿 상자를 내밀기도 하고 밭에서 따온 토마토와 호박 몇 개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그 무엇보다 귀한 선물은 그녀들의 따뜻한 눈빛과 훈훈한 인정, 그리고 예쁜 미소였다.

이번 학기에도 나는 귀한 선물들을 잔뜩 받고, 한 명, 한 명 그녀들의 얼굴을 가슴속에 소중히 갈무리 했다. 딸처럼 환한 미소로 보고 싶을 거라며 품에 안기는 그녀들의 체온이 따뜻하다.

여린 감성의 베트남 학습자는 눈가에 이슬이 촉촉해지며 말을 잊지 못한다. 사람의 정이란게 때론 그 무엇보다 강하게 서로간의 인연을 이어주기도 한다.

되돌아 보면 아쉬움도 크지만, 순간 순간의 기억들은 아름다웠던 삶의 편린으로 머물지 않을까. 통과의례 같은 시행착오도 겪었고 알게 모르게 서운함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들과 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간격이 생겼고 그것은 애정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들이 오래도록 행복하길 간절히 빌며, 또 하나의 값진 추억은 내 가슴속에서 귀한 선물로 간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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