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이 필요한 사랑
연습이 필요한 사랑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4.11.0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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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침묵이 흐르는 거실에 모녀가 나란히 쇼파 양 끝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다. 두어 시간이 지나도 필요한 말 외에는 말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불편하다기 보다는 익숙하다.

오히려 일부러 말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정적을 깨뜨리는 TV를 온종일 바라본다.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초쯤 친정엄마께서 허리를 다쳐서 3주정도 입원치료를 하신 후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다행히 여름방학기간이라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생활방식을 엄마에게 맞춰서 아침, 점심, 저녁을 규칙적으로 챙기고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우리 식구끼리만 있을때는 아침에도 남편이 스스로 밥을 챙겨 먹거나 대충 끼니를 해결하곤 했는데 규칙적인 식사라는 것이 보통 번거로운게 아니었다.

의사선생님께서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엄마는 아파트 안에만 계시며 하루종일 쇼파에 눕거나 앉아서 TV시청만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통원치료를 하면서 의사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엄마가 누워계시고 운동도 안 하신다고 일렀다.

병원을 다녀온 후 소파에는 눕지 않지만 운동을 하신다며 식사 후 5분정도 거실을 왔다갔다 걸으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밖에 나가 근처 공원에서 제대로 운동하시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차'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비난의 화살이 스스로에게 쏟아졌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투의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할 수는 없는 걸까?

혼자서 운동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 엄마 손잡고 근처 공원을 같이 갈 수는 없었던 걸까? 엄마가 처음 우리 집에 오셔서 지금까지의 나의 행동과 말투가 떠올랐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 데 필요한 말 외에는 살갑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엄마를 모시면서 내가 표현이 서툴다는 것을 느낀 것은 서로 아무 말 없이 TV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부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우리 삼남매를 홀로 키우셨다.

먹고 살기도 바빴기에 엄마가 우리들에게 사랑을 표현한다거나 우리가 조잘거리며 엄마에게 이야기할 여유도 없이 컸다.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 거의 없는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는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스킨십도 자주하면서 사랑을 보여 주었다.

그런 생활방식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익숙해졌고 청소년이 된 지금도 내가 조르면 '사랑해'라는 말을 들려준다. 한 번도 친정엄마에게 해 보지 못한 '사랑해'라는 말은 결혼 후 자식을 키우면서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지난주에 친정엄마는 집으로 가셨다. 엄마가 앉았던 자리에서 TV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함께 있을 때 드라마 속 주인공 흉이라도 보면서 얘기라도 나눌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서운하게 한 말도 걸린다. 얼마나 아프냐고 묻지도 않았고 엄살이 심하다고 괜히 심통만 부렸다.

엄마와 나의 관계, 나와 내 아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니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길들여 져야하고 연습이 필요하리라.

지금부터라도 엄마에게 마음속이 아닌 소리내어 입 밖으로 표현하는 사랑을 연습해 볼까한다. 마음속으로는 수도 없이 말하고 외쳤던 '사랑해'라는 세글자를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 본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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