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삼개포구를 거닐며
비 그친 삼개포구를 거닐며
행복의 뜨락
  • 서민웅
  • 승인 2014.06.27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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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웅 한국농어촌공사 청렴옴부즈만위원장.

계속되던 장맛비가 그치고 모처럼 날이 갠 날, 지루하던 일상을 떨칠 겸 한강 변으로 산책하러 갔다. 마포대교 근처 서편 강변북로 지하에 나 있는 마포나들목을 지나 강변에 도착했다.

그곳이 조선 시대에 생선과 소금 장삿배가 수백 척씩 붐비던 삼개포구 자리이다. 그런 장삿배가 서해를 거쳐 드나들며 한양도성에 사는 사람들이 쓸 목재, 얼음, 소금이나 새우젓 같은 물자를 실어 나르던 곳이었다.

이제 포구는 그 흔적조차 사라지고 인근 주민을 위한 팔운동, 다리운동, 허리운동을 하는 시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터 한쪽 구석 풀숲에 '삼개포구'라고 써놓은 사방 1미터는 될까 말까 하는 작은 자연석이 그곳이 옛 포구였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세월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허망한 생각마저 들었다. 강변은 장마로 불어난 강물이 둔치에 만들어 놓은 자전거 길까지 차올라 있었다. 뿌연 흙탕물이었다. 며칠 동안 한강 상류인 충청북도와 경기도 북부지방에 큰 장맛비가 이어졌었다.

하류에 강물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데도 나는 어찌 눈으로 보아야 아는지, 강물이 이렇게 불어났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나무 등걸, 페트병, 스티로폼 같은 여러 가지 쓰레기가 물에 떠서 물놀이하듯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장마 뒤라 물살이 거셀 거라 상상했던 내 생각과 달리 강물은 평화롭게 보였다.

유속이 강심(江心) 쪽은 빠르고 강변 쪽은 느렸다. 방송으로 보는 것보다 현장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넓은 강폭을 꽉 메우고 흐르는 물은 솟구치거나 내리치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흘렀다.

큰 그릇은 그 안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치더라도 그것을 포용하고 밖으로는 드러내지 않는다는 걸 가르치려는 듯이. 또 어깨를 맞대고 흐르면서도 유속이 다른 것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내면으로는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마포대교 아래 강가에는 그 지점부터 하류 쪽은 낚시 금지구역임을 알리는 붉은 글씨로 쓴 경고판이 번듯하게 서 있었다. 그래서 여느 때는 낚시꾼이 보이지 않던 곳인 데 그 날은 약속이나 한 듯 낚시꾼이 꽤 많았다. 낚시꾼 한 사람이 보통 흙탕물에 급하게 찾아낸 낚싯대를 네댓 대씩 드리우고 있었다.

자전거길 옆에 자란 허리에 찰 정도의 풀숲은 등산길을 따라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느라 흙을 들쑤셔 놓듯 여기저기 진흙이 파헤쳐져 있었다. 낚시꾼들이 낚싯밥으로 쓰려고 지렁이를 잡느라 흙을 헤쳐 놓은 탓이었다. 아마도 비가 그치자 채비를 제대로 못 하고 서둘러 나오느라 미처 미끼를 챙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낚시꾼은 물고기를 낚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옆에 그늘을 만들고 있는 갯버들 나무 아래 무료하게 앉아 있거나 옆에 있는 낚시꾼과 소주잔을 나누며 장마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서강대교 아래까지 오리쯤 걸으며 낚시꾼의 바구니를 눈여겨보아도 낚은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고, 낚싯대를 채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손맛에는 통 관심이 없고 그야말로 장마철에 갠 날씨에 강변에서 세월을 낚는 중인가 보았다.

강변 산책로를 무심히 혼자 걷는데, 장마철 유년시절에 내 고향 충북 음성의 시골 동네 넓은 마당에서 뛰어놀던 생각이 어느 결에 떠올랐다. 장마가 들면 강물은 뒤집어지고 새 물 냄새를 맡은 물고기들이 상류로 올라온다. 냇물도 마찬가지이다.

온종일 비가 차분하게 내리던 날 고향 집 안마당에는 가끔 개구리와 미꾸라지가 기어 다니곤 했다. 도랑을 타고 올라왔을 것이다. 그런 날에는 엉덩이가 근질거려 참지 못하고 앞집 식이를 부추겨 양동이가 아직 없던 시절, 어레미와 세숫대야를 들고 나섰다. 우리는 미꾸라지를 잡으러 마을 앞 도랑을 훑었다.

어른들은 물살이 센 도랑이 위험하다며 항상 말리곤 하셨지만, 그 좋은 기회를 놓칠 우리가 아니었다. 웃통은 벗어젖히고 팬티만 입은 채 도랑에 들어가서 어레미를 빗물에 쓸려있는 풀숲에 대고 한발로 주변 풀숲은 지근지근 밟으며 어레미 쪽으로 몰다가 어레미를 들면 송사리는 팔짝팔짝 뛰고 미꾸라지는 숨을 곳을 찾아 꿈틀꿈틀 재바르게 기어갔다.

그날 저녁 식사 때는 무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은 미꾸라지 고추장 조림이 입맛을 돋우어 주게 마련이었다. 장맛비를 생각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뒤편에 담장 대신 작은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을 중심으로 비가 학교 쪽 비탈로 떨어지면 금강, 학교 너머로 떨어지면 한강으로 갈리는 그곳은 분수령이었다.

세찬 바람이 불며 비 오는 날, 학교에 가면 빗방울이 흩날리며 한강 쪽으로 떨어질 놈이 금강 쪽으로 떨어지거나 그 반대쪽으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엇갈려 떨어진 빗방울이 점점 멀어져 영영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한순간에 엇갈림의 결과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치유될 수 있듯이, 헤어진 물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서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어렸을 때 비를 맞고 찰박거리며 뛰어놀던 그 빗물이 한강을 흘러가며 지금의 삼개포구 자리 앞을 지나갔을 것이다.

지금도 한강에는 내 초등학교 언덕 분수령에서 한강 쪽으로 떨어진 빗물이 섞여 있고, 고향 냄새가 녹아 있을 것이다. 한강이 이방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가까이 있던 곳 같다.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에 여행 갔을 때, 그 바다가 태평양이라는 안내인의 설명에 갑자기 한강 물과 이어져 있다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다. 이제 한강을 찾을 때면 어릴 적 장마철의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는 이 강이 고향의 품처럼 한결 편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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