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놀림
손놀림
행복의 뜨락
  • 강희진
  • 승인 2014.03.20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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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진 수필가.

오늘은 내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서 독거노인 밑반찬 봉사가 있는 날이다. 여느 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회원들이 많이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들어서는데 학생 몇 명이 들어왔다.

중3 이라고 하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일 만치 키가 크고 체격 또한 건장한 학생들이다. 알고 보니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회원 몇몇이 늦게 오는 바람에 반찬이 담긴 비닐봉지를 묶는 일을 시켰더니 3명 모두가 그 간단한 일을 갖고 쩔쩔매지 않는가.

거듭해서 가르쳐 주고 시켜 봐도 여전히 굼뜨고 어설프기만 했다. 키나 덩치로 보면 황소라도 잡을 것 같은데 묶어 놓은 비닐은 헐렁하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 회원이 비닐하나를 묶지 못하더란 말로 학생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며 예전에는 우리가 연필을 칼로 깎아서 썼는데 그것이 아마 손의 기능을 발달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거라고 의견을 냈다.

반면 요즈음 아이들은 모두 연필깎이를 사용하고 샤프를 쓰다 보니 어려서부터 손 운동을 많이 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우리가 본 것처럼 간단한 비닐도 묶지 못하는 해프닝을 낳았을 거라는 의미다. 덧붙여 그래서 기능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세대는 손수 연필을 깎는 세대까지라는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하기야 나 자신도 초등학교 6년을 연필을 깎을 때 예쁘게 다듬느라고 줄곧 노심초사했었다. 그 외에 자치기며 구슬치기 등 대부분 손으로 하는 놀이를 하며 자랐으니 손놀림이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손놀림이 부드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나 자라면서 익힌 여러 가지 놀이를 통해 보다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발전되기도 했겠다. 손을 움직이는 것도 숙달이 되고 연습을 해야만 섬세해지는 것을 숙지한 느낌이다.

올해 60이 되는 문학회 회원은 음악을 참 좋아한다. 최근 서울의 한 사설 교향악단 단원으로 플롯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악보보다는 손이 리드미컬하지 않아 젊은 사람들과의 연주가 뜻 같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 분은 40이 넘어 피아노와 플롯을 배우고 지금은 바이올린 기초를 연습 중이다. 그 모든 걸 독학으로 배우고 익히는 걸 보고 타고 난 재능으로 치부하고 말았는데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을 하며 그 분의 손을 다시 처다 보게 되었다.

여느 때는 괜찮다가도 잠이 부족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손놀림이 부드럽지 못하다는 걸 보면 똑같이 연습을 해도 좀 더 나이가 어릴 때 하는 것이 손가락 놀림에 유리하다는 뜻으로 보였다.

어릴 적 나는 새끼돼지처럼 통통한 손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고 그러다 보니 손에 대한 로망이 싹트게 되었다. 결국 손가락이 길고 흰 손을 가진 남자와 연애를 하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으나 정작 사귄 남자의 손은 크고 거칠어서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아무려나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고 그로부터 얼마 후 친정엄마는, 처음 남편을 소개하던 날 손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고 새삼스레 말씀하셨다. 손이 두꺼비 같은 게 밥을 굶기지는 않을 것 같아 결혼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보다는 섬세한 손가락만 최고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내가 아는 그 회원처럼 예술 쪽으로 세밀한 기능도 괜찮지만 억척스럽게 살림 잘 하는 투박한 여자의 손도 필요하다.

오늘 비닐 묶는 일도 못하느냐고 지청구를 받은 그 학생도 필경은 잘 하는 게 따로 있을 줄 안다. 아무리 스마트 폰 등의 기기에 의존하는 세대라 해도 나름대로 타고난 기능은 있을 테니까. 다만 아쉬운 건 우리가 해 왔던 것처럼 연필을 깎거나 해서 기능을 익힐 기회가 드물다는 거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추세다. 서투른 중에도 열심히 했던 학생들의 얼굴이 예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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