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즐거움
여행의 즐거움
행복의 뜨락
  • 이명순
  • 승인 2014.03.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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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순 수필가.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뭉실뭉실 떠 있는 구름을 보니 낯선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어제 오후부터 갑작스런 폭설과 한파로 마음이 무거웠다. 공항까지 가는 것도 걱정이고 비행기가 출발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날씨가 맑았고 비행기는 김포 공항에서 대만 송산공항으로 순항했다. 여동생과 나, 그리고 작은 딸, 세 명이 대만에 워킹홀리데이를 가 있는 큰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아들 둘을 대학에 보내고 나서야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여동생은 난생 처음 해외 여행을 떠나는 중인데, 연신 창 밖 풍경에 빠져있다.

나 역시도 패키지로 단체 관광만 하다 자유여행은 처음이라 그런지 새로운 기분이 든다. 공항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큰 딸과 반갑게 해후하니 여행의 시작이다. 나와 여동생, 두 딸들, 세대가 다른 자매와 자매의 여행이다. 낯선 곳에 오니 언어 소통 부재는 가장 큰 불편함이다.

특히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라서 더 그렇다. 다행히 소통 가능한 큰 딸이 타이베이 시내 곳곳을 안내해서 불편함 없이 다닐 수는 있었지만 큰 아이가 잠시라도 없으면 우린 음식 주문부터 모든 것들이 서툴러 당황해야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내릴 때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리려면 난 순간적으로 '잠깐만요'를 외쳤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딸들은 여기서 한국말을 누가 아느냐며 웃어댔다.

언어 소통 부재에서 오는 불편함을 느끼며 내가 가르치는 결혼 이주여성들을 떠올렸다. 처음 한국에 와서 가족들과 생활하며 언어 소통이 안 되어 얼마나 불편했을까. 내가 그 환경에 놓이고 보니 언어 소통의 소중함이 새삼 와 닿는다.

영어만 잘 해도 큰 불편함이 없을텐데 오랫동안 배웠던 영어는 지금의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한동안 중국어, 캄보디아어를 배워보겠다며 책도 사서 시작은 했었는데 그 또한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9개월간의 현지 체험으로 막힘없이 소통하는 딸을 보니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다른 한편으로는 뭐든지 시작할 수 있는 젊음이 부러웠다.

자매와 자매, 여자 넷이 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느긋하게 다니며 구경할 수 있었고 맛난 곳을 찾아가 먹는 즐거움도 컸다. 우리는 매 식사 시간마다 소문난 맛집들을 찾아 다녔다. 대만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딘타이펑, 상해식 만두, 사천요리, 샤브샤브, 우육면, 망고빙수 등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행지에서의 맛난 음식은 여행의 기쁨을 배가시켰다.

식성이 꽤 좋은 편인 여동생은 의외로 특유의 향신료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런 먹거리 여행이었다. 4박 5일의 여행 일정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만큼 여행의 즐거움이 컸나 보다. 제한된 일정 속에서 자유를 누리다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 돌아오니 달콤한 꿈에서 깬 듯 아쉽다. 누군가 그랬다.

집 떠나면 고생이고 일정이 힘들어 집에 가고 싶다가도 막상 집에 도착하면 며칠 지나자 마자 새로운 곳으로 여행 떠날 궁리를 하는 거라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젊음을 부러워 하며 두 딸은 남겨 놓고 여동생과 둘이만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일상의 나를 잠시 잊고 떠나는 여행이다. 모처럼 여동생과 오붓한 시간을 갖을 수 있었고, 여동생의 즐거워 하는 모습이 내 얼굴에 미소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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