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꽃
웃음 꽃
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4.01.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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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집안이 온통 잔치집 분위기다. 특히 안방에서는 연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길 가던 동네 분들이 “이 집에 무슨 일 있어?"하며 기웃거린다. 아버지 생신을 맞아 가족들이 다 모였다.

예전 같으면 남자들은 안방에서 애꿎은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고 있거나 술상 앞에 모여 있었을 것이다. 여자들은 주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만나지 못 했던 시간 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느라 시끄러웠을 것이며, 커버린 조카들은 아무데나 누워서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누워서 잠자고 먹기만 하던 조카들이 돌이 돌아오니 재롱을 떨기 시작했다. 큰 안방이 아기들을 중심으로 둘러앉으니 비좁기까지 하다. 밑으로 두 동생들이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았다.

한 동생이 쌍둥이를 낳는 바람에 한 번에 조카가 세 명이나 생겼다. 아주 아기였을 때는 몰랐는데 돌이 되어가니 재롱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나 바로 아래 동생들의 조카들은 다 커서 아이의 재롱을 본 지가 까마득하다. 아기들의 사소한 동작 하나 하나에 어른들은 시키지 않아도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덕분에 온 집안에 웃음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으니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난 표현력이 약한 편이다. 남의 말에 웃기는 잘하지만 내가 웃게 하지는 못한다. 쑥스럽고 민망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국어책 읽듯이 하니 웃을리 만무하다.

기회가 되면 레크레이션 같은 수업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바람이 이루어졌다. 평생학습프로그램에 레크레이션과 웃음치료수업이 생긴 것이다. 기회다 싶어 없는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처음에는 교수님이 웃으라고 하면 참 민망했다. 웃을 자세가 되어있지도 않은데 웃으라는 것은, 배도 고프지 않은데 억지로 먹으라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즐거워진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일주일동안의 크고 작은 일로 인해 언짢았던 마음이 수업을 받고나면 싹 해소 되었다.

이제는 기회가 되면 남들 앞에서 웃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겨났다. 3개월의 길고도 짧은 시간들이 흘러가고 실습 날이 되었다.

평소에 학생들 앞에서 강의 할 때는 떨리지도 않고 긴장도 되지 않았는데, 막상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니 다리가 떨리고 목소리는 개미 사촌이 되어 버렸다.

우리 학생들은 교수님의 열렬한 응원으로 실전에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성공적으로 실습을 마치고 우리 모두는 자랑스럽고 뿌듯하여 서로서로를 칭찬하며 웃고 또 웃었다. 정말로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잘 웃지를 않는다. 사실 팍팍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웃을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마음속에 새겼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는 웃음을 너무 큰 것에서만 찾으려고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작은 돌쟁이 아기가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듯 웃음은 작고 소소한 것에서부터 온다. 작은 것에도 웃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늘 바라는 행복한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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