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버킷리스트
50대의 버킷리스트
행복의 뜨락
  • 강희진
  • 승인 2013.12.10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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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진 수필가.

어제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분들과 모임이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야외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수목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보다 10년은 연배고 이제 막 60에 들어서는 분들의 관심사라 귀 기우려 들었다. 한분은 얼마 전 부인과 사별을 하고 수목장으로 치른 뒤 월요일마다 가서 나무를 살피고 꽃을 심어 가꾼다고 했다.

나무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잘 커가는 나무를 보면 우울했던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며 수목장으로 한 게 참 괜찮았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옆에 계신 또 다른 지인은 주목나무 두 그루를 밭에 심어 두었다고 한다.

부부가 죽으면 묻힐 나무라 했다. 무덤을 남기면 자식들에게 부담일 수 있고 화장을 해서 뿌리면 서운해 할 것 같아서 수목장을 선택했다고 한다.

주목나무아래 묻히고 나면 아이들이 와도 소풍 같은 기분이 들 테고 나무 아래서 놀다 가면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먼 훗날 자기가 이 세상에 없어도 그 다음 풍경이 그려지기에 주목나무를 보고 있으면 참 편안하단다.

죽음은 저 멀리 있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고 벌써 준비를 해야 하나 싶어 묘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니 나 또한 절반이상을 살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장례를 준비해야 할 만큼의 나이도 아닌 듯했다.

그래서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해 보고 싶었다. 이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을 의미하며 '죽다'라는 뜻의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으로부터 만들어진 말이다. 중세 시대에는 형을 집행할 때 목을 맨 뒤 양동이(bucket)를 뒤집어 올라간 다음 걷어차는 것으로 형을 집행했고 이로부터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이라는 말이 전해진 것이라 한다.

갑자기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을 적고자 하니 참 무거운 느낌이 들고 내가 당장 중병이 걸린 것도 어찌 될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노트를 밀쳤다. 그러다가 가볍게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 보고 싶었던 사람, 해보고 싶었던 일을 정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노트를 펼쳤다.

요즈음에는 20대의 버킷리스트, 30대의 버킷리스트 등 연령대별로 가볍고 편안하게 작성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들을 적어보았다. 적고 보니 내게 이렇게 많은 욕망이 내 안에 있었나 할 정도로 뜻밖에 많다.

다시 60대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은 빼고 정리하니 20여 가지가 되었다. 그 중에서 10가지를 최종 정리했다. 10년 안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니 다시 말하면 10년 계획이라 하겠다.

꼼꼼히 작성하고 나니 어쩐지 허탈한 마음과 겸손해지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목록이 아니라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가 관건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1년 계획도 년 초에 세우지만 곧 흐지부지 하고 말았던 일들이 많았다.

같은 맥락으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절박함도 없으니 또 계획만 세우고 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리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점점 비장함이 묻어남은 왜였는지 모르겠다. 버킷리스트가 죽음을 전제로 해서 만드는 미래의 계획표라면 긴장의 연속인 삶에서 얻는 성취감도 괜찮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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