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
천당과 지옥
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3.11.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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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급하게 울리는 현관 벨소리에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택배요"라고 한다. 문을 열자 입으로 이름을 확인하며 손으로는 물건을 건네주고 엘리베이터를 단추를 누른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계단으로 뛰 듯 내려가는 시간이 불과 몇 초 밖에 안 된 것 같다. 문을 닫고 포장을 풀어보다 지난 명절에 들었던 방송사연이 생각났다.

택배기사를 하는 남편의 고충을 절절히 담아낸 사연이었다. 아내의 사랑어린 편지내용에 고개가 끄덕여졌었다. 택배기사를 가끔씩 보지만 천천히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요즘에 들어서 나도 꽤 바쁘게 산다. 오전, 오후, 저녁으로 시간을 쪼개놓고 일하는 시간, 집안 살림하는 시간과 저녁에 운동하는 시간까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살고 있다.

주말에도 각종 행사나 집안 대소사에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쉬는 요일이라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예전에 어느 작가가 있었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원고청탁에 책상은 늘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방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몰골 또한 며칠씩 씻지도 않고 방에만 처박혀 있으니 거리의 노숙자를 연상케 했다.

작가는 여유롭게 깨끗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상상을 늘 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작가는 푸른 잔디와 예쁜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책상도 잘 정돈되어 있었고 방 또한 깨끗하게 치워져있었다. 느긋하게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던 작가는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원고청탁도 없고 잔소리를 생활화하던 아내도 없는 것이 허전하고 싫었다.

지나가는 우체부를 붙잡고 물어 보았다. “여기가 대체 어디요?" 우체부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여기가 지옥이지 어디요!" 라면서 지나갔다. 자기가 꿈꾸던 세상이 지옥이라니 믿기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작가는 어질러진 책상이며 먼지가 날리는 방이 소중하고 고마웠다 이작가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읽은 글이다. 자유로운 나의 시간을 갖고 싶어 열망 할 때라 바쁜 시간이 소중하다는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커서 도회지로 나가게 되면서 나는 자유를 만끽하며 지낼 수 있었다. 한가로운 시간과 조용한 공간은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만 좋았다. 활동적인 내가 집안에서만 있다가는 병이 날 것 같아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을 찾아서 하다 보니 그 작가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취업난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이 회사 저 회사를 기웃 거린다. 일이 밀려서 야간작업을 한다고 하면 예전에는 불쌍하다, 안됐다는 말을 농담처럼 날렸지만, 지금 사회는 상황이 다르다. 일이 많다는 것은 회사가 튼튼하다는 것이고, 오래도록 걱정 없이 직장을 다닐 수 있으니 복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방송사연의 택배기사의 부인에게 전해주고 싶다. 당신의 남편은 지금 천국을 누비고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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