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의 삶
미완성의 삶
행복의 뜨락
  • 이명순
  • 승인 2013.08.3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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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순 수필가.

나는 뜨개질을 싫어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조급한 성격 탓은 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손재주도 없는 편은 아니라 자부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뜨개질은 못했고 하고 싶단 생각도 안 들었다. 다양한 뜨개 작품들을 보면 잘 했다 싶으면서도 내가 하고 싶단 욕구는 적었다. 그랬는데 우연한 계기로 뜨개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을 사기 위해 읍내를 돌다 보니 '○○수예점'이란 간판을 단 곳이 있었다. 들어가 보니 여러가지 실과 뜨개 작품들이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30년 이상 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뜨개질로 평생을 보내셨다고 한다. 옛날에는 수예점이 성행했는데 요즈음은 보기 힘들다.

나 역시도 중고등학교 때 가정 시간 준비물을 위해 수예점에서 다녔던 추억이 새롭다. 그 때는 가리개나 병풍에 자수를 놓았었고 버선 깁는 방법도 배우곤 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바뀌다 보니 바느질이나 뜨개질은 고리타분한 일이 되어 버렸다. 무엇이든 흔하게 구할 수 있고 쉽게 버리는 풍조 때문인 듯도 하다.

무심코 지나치던 수예점에서 잠시 추억에 젖었다. 그 때는 하기 싫었지만 요즘 유행에 맞게 변화된 뜨개 작품들을 보니 새삼스런 느낌이다. 재료를 구입하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뜨는 방법을 배웠다.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 그런지 실의 느슨함과 쫌쫌함을 유지하는게 어설펐다. 조금 연습하면 괜찮을거란 격려 속에 소파 방석을 뜨기 시작했다.

밤에 텔레비전을 보며 잠깐씩 뜨개질을 했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허리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팠다. 뜨개를 잘 하는 지인이 새삼 경이로웠다. 초보에게 무엇인들 쉽겠는가. 무늬를 맞추어야 하는데 한 코 빠트리면 다시 한 줄을 풀고 두 줄을 다시 뜨다가 또 풀렀다.

점점 힘이 드니 하기가 싫어졌다. 처음에는 방석을 뜨겠다고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쿠션커버로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이걸 왜 시작했지 하는 후회도 들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다 보니 조금은 익숙해졌다. 한 두시간씩 몰입하니 잡념도 사라지고 하루의 일상을 되돌아 보며 성찰하는 반성의 시간도 되었다.

한 코만 빠트려도 무늬가 맞지 않아 풀렀다가 다시 떠야 했다. 이제껏 살아 온 내 삶도 이 실처럼 풀렀다가 다시 뜰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되돌릴 수 없으니 기회가 딱 한번 뿐인 운동 경기 같기도 하다.

꿈 많았던 20대와 30대, 40대를 지나 어느새 오십대가 되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았던 시행착오를 일부분이라도 되돌려 뜨개질을 하듯 다시 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 오면서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했던 선택 말고 다른 길을 갔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하다.

뜨개 작품 목표가 방석에서 쿠션으로 하향 조정되었지만 아직도 미완성이다. 한가락씩 실을 엮어 촘촘히 짜여지는 모습 속에 오늘 하루를 투영한다. 급하게 서둘지 않고 천천히 즐겨볼 생각이다. 내 삶도 이렇듯 엮어져서 오십년이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먼 훗날 되돌아 볼 때 어떤 작품으로 완성되어 있을까. 현재의 시간들을 더 촘촘히 빠트리지 말고 엮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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