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5)
행복(5)
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3.08.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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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친정엄마가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들르셨다. 나이가 드니 아픈 곳만 생긴다며 울적해 하신다. 음료수를 대접하기 위해 주방에 있는 내게 “이게 언제 찍은 사진이냐?" 하면서 액자를 들고 오신다.

지난번 수필 낭송회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하자 잘 나왔다며 손으로 액자를 쓰다듬고 예쁘다고 하신다. “엄마 딸이니까 그렇지 예쁘기는~" 하면서 웃는 딸을 보며 잠시 전 아프다는 말은 잊어버리신 듯하다.

중년을 넘어가는 딸의 사진을 어린 자식 들여다보듯 흐뭇해하시는 엄마를 보니 내 지갑 속의 아이들이 생각난다. 심리학 수업을 들을 때 일이다. 교수님은 인사보다 먼저 지갑을 열어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네다섯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앙증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지갑을 접어 넣으며 교수님은 말씀 하셨다. 본인이 지치고 힘들 때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궁리하던 중에 생각난 것이 사진이란다. 그래서 자신을 가장 웃게 만들고 행복하게 해주었던 딸아이의 다섯 살 때 사진을 갖고 다니게 되었다며 여러분도 참고해 보라는 강의를 듣고 오던 날 밤에 사진첩이란 사진첩은 모두 꺼내 놓았다.

한장 한장 추억이 깃든 사진이고 모두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예뻐서 웃게 만드는 사진이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밤을 새우며 고른 사진이 아들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진이고 또 한 장은 딸애가 교생실습을 나갈 때 찍은 사진이다.

키는 작지만 야무지고 똘똘하며 유머까지 갖고 있어서 아들 곁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많았다. 늘 작은 키 때문에 속상해하는 어미 마음을 한없이 기쁘게 해주었던 시절이었다. 딸애가 교생실습 나갈 때 쓸 증명사진을 찍고 온다며 만나자고 했다.

현관 쪽에서 엄마를 부르며 다가오는 딸애는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늘 바지를 입고 배낭에 책만 잔뜩 메고 다니던 모습만 보던 나는 세련된 직장여성을 보고 있는 듯 했다. 탈 없이 잘 커준 딸이 너무 예뻤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참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순간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무던히도 셔터를 눌러 댔다. 우는 모습, 웃는 얼굴, 어떤 모습이든 예쁘고 사랑스럽기에 모두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 사진을 찍으면 현상해서 나올 때까지 두근거리는 기다림이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눈은 감지 않았는지 풍경과 어울리게 찍었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예쁘지 않고 풍경이나 표정이 이상해도 그 때의 추억이라고 사진첩에 간직하고 가끔씩 못난 사진 덕에 한번 더 웃기도 한다.

사집첩을 뒤적이다 보면 사진은 지난날을 선명하게 이야기해준다. 아이들이 입은 옷이나 신발, 머리모양, 엄마가 들고 있는 가방이나 소품들을 보면 언제 유행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소풍가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찍었던 사진속의 누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지낼까 궁금하고, 보고 싶어지며 그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이 나를 청춘으로 만들어 준다.

누구든 사진 속에서는 영원히 청춘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 현상을 거의 하지 않고 컴퓨터에 사진 방을 만들어 놓고 그 곳에 저장한다.

사진도 찍는 즉시 확인하고 예쁘게 찍히지 않은 것은 바로 삭제하고 원하는 표정이 나올 때까지 찍고 또 찍기를 반복한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어서 사진첩이 아닌 컴퓨터 사진 방에서 너무 예쁘고 완벽한 표정의 사진들을 보면서 얼마만큼 웃고 행복할 수 있을지 조금 궁금하다. 앞으로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내 지갑 속 아이들은 영원히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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