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정화수
어머니의 정화수
  • 반영섭 수봉초 교감
  • 승인 2010.03.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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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신정연휴 때 시골집에 어머님과 이웃에 사시는 형님을 뵈러 갔다.늘 그래왔듯이 제일 먼저 집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팔순이 넘으신 노모가 사시기 때문에 습관이 되어 버렸다.
 

안채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나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하는 것이 있었다. 은빛 찬란한 스테인레스사발에 시선이 고정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 팔남매의 숨바꼭질 장소로도 쓰였던 장독대이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가장 잘 생긴 커다란 씨간장항아리 그 위에 살얼음이 살짝 낀 큼지막한 사발 하나 바로 정화수였다. 집에 들를 때마다 보곤 하는 정화수였다.

그러나 오늘 본 정화수는 나의 명치끝을 찡하게 하여 눈물샘을 자극하였다.오늘 같은 엄동설한에 살엄음이 살짝 얼어 있음은 물을 갈아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증거인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팔십이 넘으신 어머님께서 어김없이 치성을 들이신 것이다.봄, 여름, 가을에는 福자가 새겨져 있는 하이얀 사기그릇사발을 사용하는데 겨울인지라 얼어 깨지기 때문에 스테인레스 사발로 바꾼 것이었다. 팔남매를 위해 빌고 또 비신 것이다. 이른 새벽 살을 에는 추위에도 새로 물을 갈아 놓으시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늘 그 자리에 놓여있던 하얀 사발이다.
 

그 하이얀사발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1964년 청주로 기차 통학을 했던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야 했다. 첫기차가 6시경에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기차는 화물열차와 여객열차가 구별없이같이 운행했기 때문에 청주까지 2시간정도가 소요되었다.그래서 한겨울에는 초승달이나 샛별이떠있을 때 일어나야 했다.
 

우연이 일찍 눈을 뜬 어느날 뒤뜰 장독대에서 중얼거리는 어머님목소리가 들려왔다.문살사이에 명함한장크기로 붙여 놓은 유리판을 통해 장독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아직 여명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겨울 새벽 살을 에는 찬 공기를 맞으시며 어머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치성을 드리고 계셨다.

어머님은 팔남매를 기르시며 온갖 어려운 일들을 무수히 겪어내셔야 했다.정화수는 샛별과 달빛을 먹은, 해뜨기 전의 최초의 순수한 물을 의미한다고 한다.엄동설한 추위 속에서도 이른 새벽 우물가에서 정화수를 길어 올리시던 그 정성으로 우리를 길러내신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움도 닥친다.한번은 아내가 몹시 아파 서울 삼성병원까지 실려갔던 적도 있다. 그때도 어머님은 계속 며느리의 빠른 건강회복을 염원하셨다.그 힘들었을 때도 이른 새벽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셨을 어머님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님은 지금 홀로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아무리 모시겠다고 해도 고향에서 사시는 게 더 편안하다 하신다.만성관절염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자식들을 위해 농약 한번 치지 않고 밭을 가꾸신 농산물을 나누어주신다.20년 전, 어머님은 아내에게 오래된 하얀 사발을 하나 주셨다.아버님께서 50년대에 밥사발로 쓰던 것이었다.
 

어머니의 정화수 이야기를 들려준 뒤부터 아내도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물을 받아 조리대 옆에 놓는다. 그 정화수가 매일 나의 하루를 일깨운다.언제나 어머님을 생각하면 명치끝이 시려온다.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머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따라가기란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정화수를 보며, 얼마 남지 않으신 어머님의 여생, 지극한 정성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다.석가의 말씀에 어버이가 자식을 낳는 것, 열 달이나 뱃속에 품어 중병이나 걸린듯하고, 낳는 달에도 어머니는 위태롭고 아버지는 두려워하여, 그 실정을 이루 말하기 어려운 바가 있다.
 

그리고 낳고 나서는 자식은 마른자리에 옮기고 어머니는 축축한 곳에 누워 있으며, 정성이 지극하기에 피가 변해 젖이 되며, 쓰다듬고 닦고 목욕시키며, 옷 입고 밥 먹는 것을 가르친다.자식의 얼굴이 즐거우면 어버이도 기뻐하고,자식이 혹시 근심에 싸이면 어버이의 마음도 애탄다. 외출하면 사랑해 생각하고, 돌아오면 잘 키우고자 애써서 마음에 걱정하여 행여 악해질까 두려워하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요즈음 연휴 때 고향에 가보면 쓸쓸하기 그지없다. 시골에는 노인분들만이 굽어진 허리에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시고 고향을 지키신다.모두 우리의 어버이들이시다. 연휴때만 되면 자식들은 국내 관광지로, 바닷가로, 해외로 황금같은 기회라며 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도 살만해 개인의 여가와 취미를 살리고 만끽하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된 것이다.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일제시대에 2등국민으로 태어나 설움을 겪고, 6.25전쟁을 겪어 모진 목숨을 부지했으며 항문이 찢어지도록 가난한 보릿고개를 이겨내며 이를 악물고 자식을 키워 내신 그 분들이 바로 70대이후의 노인분들인 것이다.우리의 부모님들이시며 30대이하의 손주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인것이다.

그러나 현 세태는 이런 노부모님께 물질적으로만 봉양하여 효를 행하였다고 착각하는 자식들이 주변에 많음은 실로 안타깝다.비록 떨어져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여도 出必告反必面으로라도 효를 행합시다.우리도 머지않아 곧 노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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