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선물
아주 특별한 선물
행복의 뜨락
  • 박윤희
  • 승인 2013.08.07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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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희 수필가.

봄인데도 날씨가 제법 차갑다. 밭에 나가 보니 아버지 산소 주변에 빙 둘러 쑥이 가득 찼다. 엄마는 성묘 때만 되면 저 놈의 질긴 쑥 줄기 때문에 산소 떼가 자라지 않는다며 야단이시다. 하지만 나는 땅 속에 박힌 그 질긴 줄기와 뿌리보다 쑥 향에 내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음력 3월에 8남매 중 7번째인 나의 생일이 제일 먼저 찾아온다. 그래서 엄마는 쑥을 뜯어다 절편을 해 주셨다. 언제부터 언제까지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크도록 다른 떡도 아닌 쑥 넣은 절편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 때 언니들은 내 생일에만 꼭 떡을 해 준다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 때가 언제인가? 지금 되돌아보면 참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평소에 나는 내 생일을 잘 챙기지도 않는데다가 요즘 계속 바쁘고 정신없었다. 그런데 생일 전 날 아들 녀석이 나에게 생일 선물 뭐 받고 싶냐며 물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후로는 내 생일을 안 가르쳐줘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이 내심 싫지는 않았다.

“글쎄, 너 돈 없잖아?" “아니.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케이크 사 줄까?" “그냥, 장미꽃이나 한 송이 사 와. 아들에게 꽃 선물 받아 보게."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지부지 되었다. 그리고 남편과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 호프집에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며 늦게까지 놀게 되었다.

10시 30분쯤 문자가 하나왔다. 그런데 저장도 안 되어 있는 모르는 번호라서 무심코 지우려고 하다가 보니 생일 축하 메시지였다. '내, 생일이 내일인지 어떻게 알았지?' 사실 내 생일은 아는 사람은 아주 친한 지인들뿐이라 의아했지만 그냥 흘려버렸다.

늦게까지 놀다보니 어느 덧 밤 12시가 되었다. 12시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띵동, 띵동....... 갑자기 문자가 계속 들어왔다. 그런데 하나같이 저장되어 있지 않는 번호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다. 하나하나 모두 읽어보다 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흘러 나왔다.

모두다 아들 녀석 친구들이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였다. 짧고 굵게, 때로는 장문의 내용을 구구절절이 써서 보낸 소중한 메시지였다. 30여 통의 문자를 받으니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모임 사람들 앞에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 우리 아들이 엄마 생일이라고 어디까지 광고 한 거냐며 말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들에게 물어보니 엄마의 생일에 뭔가 엄마를 위한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 친구들에게 이벤트를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했다.

처음으로 많은 아들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돈을 주고 사 준 어떤 선물보다 몇 천배는 값지고 소중한 선물을 받아서 이번 생일은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러고 보니 작년 결혼기념일 때도 아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결혼기념일 2주 전부터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 자신이 저녁을 사 드리고 싶다고 했다.

아들이 사 준 저녁 한 번 먹어보자며 남편이 거들었다. 아들 녀석 한 달 용돈 4만원인데, 8천 원짜리 돈가스를 사준단다. 가족 네 명이 먹으려면 3만 2천원. 용돈 준 지 꽤 오래 됐는데 용돈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저녁 사준다는 말에 밥값이 누가 내는 게 뭐가 중요한가.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기념일에 아들 덕에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를 먹고 남편이 계산하려는데 아들이 극구 본인이 낸다고 하였다. '누가 돈을 줬나?' 하는 생각에 아들이 돈가스 값을 지불하게 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당신이 아들에게 돈을 주었는지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다. 밥 잘 먹고 기분도 좋고 부러울 게 없다.

며칠 후, 아들에게 돈 어디서 났냐며 물었더니 본인이 직접 벌었다고 했다. 네가 무슨 돈을 버냐며 물어보니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저녁을 사드리려고 하루 용역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 아들이 유난히 일찍 봉사활동을 간다며 나간 적이 있었다. 토요일, 일요일이면 봉사활동으로 유난히 더 바쁜 아들 녀석이 토요일 새벽 6시쯤 봉사활동을 간다고 나간다고 나간 기억이 났다.

그 날이었던 것 같다. 버스를 두 번 타고 가서 00오리농장에서 하루 종일 거름 나르고 치우며 일하는데 냄새가 너무 지독해 구토가 나서 3시간쯤 일한 후 도망치고 싶은 거 꾹 참았고 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태어나 그렇게 힘든 일을 한 적이 처음이었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가슴 찡했다. 우리 아들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부모들이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아 나약하다고 핀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직도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어느 새 몸과 마음이 부쩍 커 버린 아들을 보며 뿌듯했다. 내년 생일에는 100명의 아들 친구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고 싶다고 아들에게 말하니 아들이 좋단다. 또, 1년을 어떻게 기다리지? 내년에 맞을 내 생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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