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있는 거실
텔레비전이 있는 거실
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3.04.04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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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텔레비전에서는 주말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남편, 딸과 함께 말 한마디 나누지 않으며 보고 있다. 간혹 “아이고 저러면 안 되는데" “그래 잘 했다" “내 그럴 줄 알았어"를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한마디씩 던지며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상가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지난번 집에서는 텔레비전이 안방에만 있어서 하루에 한 번도 틀지 않은 적이 많았다. 잘 때만 방에 들어가기에 특별히 시청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켜곤 했다.

그렇게 텔레비전의 중요성을 느끼고 살지 않았기에 이사를 가면서 고민 중 하나가 텔레비전이었다. 이십년이 되어가는 텔레비전을 버리고 새 텔레비전을 장만해야 할지 거실에는 아예 놓지 말 것인지 생각이 많았다.

요즘은 거실에 텔레비전을 놓지 않은 가정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가깝게 지내는 선생님 댁에도 거실을 도서관처럼 꾸며놓았다. 언제든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에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 끝에 거실에 새 텔레비전을 사놓고 안방에는 예전 것을 놓기로 결정 하였다. 남편과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다를 때 좋을 것 같았다. 예전보다 큰 화면과 선명한 화질 때문인지 더욱 보는 맛이 났다.

70년대에는 텔레비전 있는 집도 드물었고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문이 달린 텔레비전장 속에 있다가 시청할 때만 얼굴을 내밀었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는 영화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저녁을 빨리 먹고 가야만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주인은 식사도 안했는데 텔레비전 켜줄 때만 기다리며 앉아 있기도 했었다. 인기 있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거리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울면 어려서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도 모르면서 따라 울고, 웃으면 모두 따라서 웃었다.

지금은 종일 방송을 하니 아무 시간이나 시청을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저녁5시30분부터 방송 조종시간을 거쳐서 6시가 되면 애국가와 함께 방송이 시작 되었다. 인심 후한 집주인이 간식까지 챙겨줄 때도 있어서 하루 저녁이라도 거르지 않고 텔레비전 시청을 하러갔던 생각이 난다.

지금과는 너무 동떨어진 흑백텔레비전의 추억을 얘기해도 아이들은 별 반응이 없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기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 누가 무슨 일을 하든, 말든 상관을 하지 않는다. 식사 후에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가족과의 대화도 기초적인 대화 외에는 오가지 않는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고등학교 3학년인 여학생이 엄마의 습관 좀 고쳐달라는 하소연을 했다. 엄마가 스마트폰 중독에 걸려서 밥 먹으러 나오라는 말도 문자로 하며 밤늦게 오는 수험생 딸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스마트폰에만 관심을 두고 산다고 했다.

그런 일에 비하면 텔레비전 시청은 권장할만하다는 생각에 구입하게 되었다. 예전같이 여러 명이 둘러앉아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것도 대화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 있는 드라마가 방영된 다음날에는 여지없이 도마 위에 제일 먼저 드라마의 명대사들과 얄미운 인물이 오른다. 드라마 시청을 안 하면 대화에 합류하지 못하고 차만 마시고 있어야한다.

이제 돌도 되지 않은 조카딸은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를 틀어주면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덩달아 어른들도 아이처럼 동요도 부르고 율동도 따라 하게 된다.

지금도 70년대처럼 한집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던 그 정서대로 시골 경로당에서는 큰방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시청을 하며 정담을 나눈다. 한 때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우습게 여긴 적도 있었다. 신문이나 컴퓨터로 세상 소식을 보는 것이 멋스럽다고 느낀 사람들의 입소문 때문이다.

요즘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미처 보지 못한 프로그램을 찾아서 볼 수도 있다. 각자의 방에서 혼자만 즐기는 스마트폰보다 가족과 함께 차를 마시고, 웃고 얘기하며 시청하는 모습이 더 정겨울 것 같다.

바보상자라고 여기던 사람들도 이제는 거실로 나와서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식구들과 함께 보며 하루의 피로를 웃음으로 날려 보내는 건 어떠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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