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종이 한 장
길 위에 종이 한 장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3.03.1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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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아침 햇살이 넓은 창문을 통해 거실을 환히 비춘다. 모처럼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다보니 기차시간이 촉박하다. 급하게 단장을 하고 가방을 꾸려 택시를 타고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출발5분전에 승차해서 자리에 앉았다. 일요일 정오인데 대전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오늘 1박 2일 일정으로 대전에서 종이접기협회 워크샵일정이 있어서 충주선생님과 함께 가기로 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그 선생님께서 못 가셔서 혼자 가는 길이다. 미리 인터넷으로 자리예약을 같이 가기로 했던 선생님과의 배치 때문에 통로쪽으로 해서 바깥풍경을 여유롭게 보지 못하는 것이 혼자 가는 내내 아쉬웠다.

워크샵에 참여를 등록하면서 이번 기회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 빈자리를 느끼게하고 존재감을 일깨우고 싶어서 비밀로 하고 출발하는 길이었다. 대전역에 내려서 워크샵이 열리는 장소에 가니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선생님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협회 자격검정에 관해 바뀌는 부분이나 새로운 자격제도에 대한 설명이 있은 후 곧바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손끝으로 만드는 것은 익숙하고 모두 그 분야에선 전문가라 그런지 재료만 받아들고도 화면에 나온 작품을 보고 앞에서 진행하는 선생님보다도 빠르게 골판지로 봄꽃을 피어나는 리스를 만드셨다.

주변을 둘러보니 200여분 넘는 선생님들의 눈빛이 초롱초롱거리며 한 가지라도 더 배우려는 열정이 눈부시다. 저녁은 충북연합회 소속 선생님들과 자리를 함께 해서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먹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가 씻은 후 다시 모였다.

지금까지 16년째 종이접기 협회에 소속되어 음성종이접기교실을 운영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워크샵도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방과후 강사를 하면서 과연 지금 가는 이 길이 잘 가고 있는 건지 스스로 묻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면서 답답할 때도 많았는데 하룻밤이지만 웃고 떠드는 중에 고민이 해결되었다.

처음 이 곳에 올 때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자는 것이 걱정스러웠는데 '종이'라는 소재를 함께하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편했고 전문인이전에 아줌마라서 인지 아침에는 호텔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사우나도 함께 갈 수 있었다.

큰아이가 세 살무렵 종이접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자격과정을 취득하면서 '종이 한 장'이 펼치는 마술같은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어 인생의 길이 한길로 정해졌다. 그것을 기본으로 늘 새롭게 도전하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지금 이 자리에 당당한 전문인으로 서 있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옳은지를 말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여있는 물이 되지 않기 위해 늘 배우려는 자세이다. 내 인생의 길위에서 펼쳐진 '종이 한 장'의 꿈이 더 멀리 비상하는 그 날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손끝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뜨거운 열정은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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