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비껴가는 가게
세월을 비껴가는 가게
행복의 뜨락
  • 한기연
  • 승인 2012.12.28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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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 수필가.

40여년을 한 곳에 살다보니 이젠 토박이라는 말이정겹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장구경을 갔다가 만두를 먹으러 '음성빵집'을 들렀다.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주인내외는 여전히 구수한 말투로 손님을 반기고 홀과 주방을 가르는 긴 탁자에 서서 만두를 빚고 계신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기억되는 젊은 남자가 주문을 받고 만두와 찐빵을 주문했더니 찐빵은 지금 없다며 미안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아들이 두 부부의 일을 돕고 있는 듯 보인다. 잠시 후 만두를 주고 찐빵은 한 개가 남았다며 서비스로 내어 놓는다. 시 주인 노부부를 닮아 정이 넘친다.

만두를 맛있게 먹으며 활짝 열린 문으로 장터에 오가는 사람구경도 쉬엄쉬엄하는데 주인 아들이 짐받이가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나간다. 학창시절 간식으로 찐빵을 즐겨 먹었다. 그 시절 크기도 크고 가격도 싼 찐빵은 학생들에게 최고의 먹거리였다.

더구나 음성빵집의 찐빵은 크기도 컸지만 맛도 최고였다. 고등학교시절 패거리처럼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선생님들 몰래 교문밖을 빠져나와 음성빵집으로 향했다.

뜨거운 찐빵을 호호 불어가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먹노라면 시간은 어찌도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오후 수업종이 땡치기 직전에 헉헉거리며 교실로 달려가곤 하였다. 가끔씩 장날 시장거리를 지나게 되면 '음성빵집'이라는 가게앞에서 간판을 한 번씩 올려다 보곤 한다.

열려진 가게문으로 세월을 거슬려 깔깔거리던 친구들과 내모습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스쳐지나간다. 학창시절의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선생님 눈을 피해 달콤한 찐빵 한 개를 먹고 교실로 돌아오면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큰소리 치고 끼리 끼리 모여 앉아 교묘하게 교칙을 어길 궁리만 하던 호기롭게 당당했던 학창시절이 그 가게안에 숨어 있다.

음성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어느 덧 40을 훌쩍 넘겼다. 도로는 정비되고 건물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서서 모르는 곳도많이생겼다. 그러나 시장통에도 옛 간판 그대로의 이름을 지닌 곳이 간혹 있고 골목길은 세월을 빗겨 간 듯 추억이 서린 곳도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이 묻어 있고 앞으로의 인생길에도 함께 할 음성에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가게와 학창시절 푸근했던 주인내외가 있어서 그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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