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장수와 우산장수
짚신장수와 우산장수
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2.11.2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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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과 들처럼 우리도 매년 계절에 맞는 옷을 갈아입고 생활한다.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두꺼운 옷이 그리워지는 계절에 와있다. 어느 시인은 그림자 방향이 달라지는 걸로 계절을 감지한다지만 난 거리를 지나는 여인의 옷차림에서 계절을 느낀다. 설악산에서 단풍소식이 들려오면 “벌써?"라고 묻기도 전에 바로 뒤따라온 단풍이 곁에서 웃고 있다.

단풍을 차창 너머로 구경하며 군에 간 아들 면회를 다녀왔다. 넓은 연병장 주위에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반은 떨어지고 반쯤은 사정하듯 매달려 있었다. 주말인데도 쉬지 못하고 청소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낙엽도 밉고 가을도 덩달아 미웠다. 지난여름 면회 왔을 때에는 지독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저주하듯 쏘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에게는 살이 되고 피가 되었을 여름의 태양이나, 추수의 기쁨을 안겨주었을 가을을 원망하는 자신이 철부지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군복을 입고 있는 아들 앞에서는 다른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만 기다려 7개월만 고생하면 돼 어려운 졸병시절도 다 지났으니까 이제는 시간도 빨리 갈 거야" 라는 위로의 말을 던지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옆의 단풍들이 노을과 맞물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잠시 전 야속했던 가을을 잊은 채 이 계절을 찬양하는 어리석은 엄마는 창 밖 풍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현관을 들어서니 집안이 깜깜하다. 도서관에 간 딸이 오지 않았나보다. 이른 아침 밥 한술을 뜨는둥 마는둥하며 도서관으로 출근하듯 집을 나서는 딸애가 측은하고 안쓰럽다. 매일 밖으로 도는 엄마에게 힘들다는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공부하는 딸애가 고마울 때가 많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로 이렇게 같은 집에서 살아 본 게 처음이다.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년 초에는 집에 머무를 것인지 타지에서 학원을 다녀야 될지 망설이다가 엄마 곁에 있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늘 곁에 두고 싶었던 마음에 내심 기뻤다. 그런데 그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짐을 진 듯 무거웠다.

거의 매일 집을 비우다보니 반찬이나 간식을 신경 써줄 수가 없었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딸은 “괜찮아"를 연발했지만 엄마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시험도 다가오는데 시월 달은 왜 그렇게 행사도 많은지 야속하다. “하루는 스물 네 시간이야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너무 조바심내지 않아도 돼“ 하면서 딸에게 위로의 말을 던진다.

옛날에 두 아들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는 늘 근심과 걱정에 잠겨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 했다. 그 이유는 큰아들은 우산을 팔고 있었고 작은아들은 짚신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해가 쨍쨍나도 걱정이고 비가와도 걱정이었다.

그때 이웃에 사는 노인이 비가 오면 큰아들이 장사가 잘 돼서 좋고 해가나면 작은아들이 좋고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긍정적인 삶이 마음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지금 군에 간 아들 생각을 해도 불안하고 시험을 코앞에 둔 딸애를 생각해도 불안하다. 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것은 모두 내가 짊어지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바꿔 보기로 한다.

시간이 빨리 가면 아들이 얼른 제대를 해서 좋고 시간이 천천히 가면 딸에게는 공부할 시간이 더 주어져 좋을 것이다. 오늘 해가 떠도, 비가 와도 행복한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엄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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