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이 끝나고
백일장이 끝나고
행복의 뜨락
  • 이명순
  • 승인 2012.11.1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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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순 수필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날 네 번째 반기문 백일장이 개최되었습니다. 반기문 총장 생가 옆에 조성된 평화랜드에서 초,중,고와 대학 일반부 참가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글을 썼습니다. 주어진 제제를 가지고 정해진 시간 내에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날의 주어진 제제가 나의 체험과 잘 맞아야 하고, 의미화 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글이 쉽게 풀려야 합니다. 어떤 참가자들의 경우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글을 써 내려갑니다. 주어진 제제가 자신의 생각과 맞았나 봅니다. 반면에 실마리를 찾지 못해 쓰다가 버리고 쓰다가 버리며 괜한 원고지만 자꾸 구겨 버리는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이래 저래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절반 가까이 지나면 마음만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넓은 잔디밭에서 글을 쓰는 참가자들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올 가을은 나뭇잎이 유난히 곱게 물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황금빛이 빛납니다. 파란 하늘은 오늘따라 더욱 맑고 높기만 합니다. 초등학생들이 어느새 다 쓴 원고지를 가지고 옵니다. 자신의 생각을 순수하게 표현하기에 망설임 없이 쓸 수 있는가 봅니다. 글을 쓰다 생각에 잠겨 있는 일반부 참가자를 보니 오래전 백일장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설성공원에서 개최되었던 제2회 음성군 여성백일장이었습니다. 여성회관에서 여성취미교실로 글쓰기 교실이 개강되었는데 강의를 맡았던 선생님의 첫인상이 너무 좋아서 등록을 했었습니다. 부담없이 와도 된다는 말씀에 일주일에 한 번씩 3개월의 글 공부 과정이 끝났고 그 해 여름을 보낸 후 백일장이 개최되었지요. 백일장에 참가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망설여지는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게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산문 부분에 참여했었고 두 개의 제제가 주어졌는데 '외출'과 '열매'로 기억됩니다. 무얼 선택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짧은 순간에 수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결국 선택한 것은 '열매'였는데 그 때는 백일장의 제제는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되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감나무와 어머니'라고 제목을 내 맘대로 바꾸는 실수를 했었습니다.

지금은 황당하지만 그 땐 전혀 몰랐습니다. 가을이란 계절과 열매를 생각하니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주홍빛의 감이었습니다. 나는 말랑한 홍시와 단감을 모두 좋아했었고 친정 어머니가 특별히 좋아한 과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감나무와 어머니'로 산문을 썼는데 뜻밖에도 좋은 열매를 수확 했습니다. 백일장 참가는 처음이었는데 과분한 결과를 선물로 받았지요. 그 때의 경험이 이후로 내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십 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좋은 글벗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백일장에 참여 안했다면 글벗들과의 인연도 없었겠지요. 백일장에서의 결과 보다는 글벗들과 만남이 더 소중했고 좋은 글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 더 없이 귀한 열매였습니다.

이번에 반기문 백일장에 참여한 분들 모두 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을 달리하면 결과 여부가 꼭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 가슴 한 켠에 소중하게 갈무리 될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반기문 총장님의 생가도 들러보며 황금빛 가을 날의 여행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살다 보면 우연한 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풋풋했던 꿈을 가지고 도전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시간은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가서 새롭게 시작해 보고도 싶습니다. 햇살 좋은 가을 날 평화랜드 잔디밭에서 글을 쓰던 모든 이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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