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커피
그들만의 커피
  • 음성뉴스
  • 승인 2012.09.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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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커피를 마시며 내려다 본 건물의 상호가 선명하게 보인다. 맛도 모르며 하루에도 몇 잔씩 자판기 커피를 뽑아마셨다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는 친정엄마 때문에 속 타는 마음을 커피로 달랬다.

흥분제 역할보다는 진정제 노릇을 커피는 충분히 해주었다. 잠든 엄마를 확인한 후에 병원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펼쳤다.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멋진 노신사에 옆에, '그 커피의 사연' 이란 제목에 눈길이 멎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2년 서울커피엑스포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콜롬비아산 커피를 들고 온 마리아노 오스피나였다. 그는 우리에게 좋은 커피의 조건을 하나하나 성의껏 알려주었다. 사시사철 일정한 기온과 강우량, 어떤 상태에서 수확을 했으며, 껍질은 어떻게 까고 숙성시켜야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전문가를 제외한 우리는 커피에 대한 얄팍하고 단편적인 지식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크게 감동받거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알게 된 것은 사실이다. 생소한 이름인 '오스피나 커피'를 알리고자 엑스포에 참가를 했고 그의 삶까지도 알게 되었다.

대통령을 지낸 세 명의 할아버지 뒤를 이어받지 않고 커피에만 정열을 쏟으며 살았다고 한다. 오스피나는 자기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넘쳤다. 이 멋진 노신사에게서 향기롭고 품위까지 갖추어진 고급 커피 한 잔을 마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오스피나만큼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갖고 있는 여인을 알고 있다. 웃음이 전이 될 만큼 웃는 모습이 예쁜 여인이다. 그녀가 타주는 커피에는 웃음이 묻어날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마리아노 오스피나처럼 잡지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그녀와 그의 삶까지도 잘 알고 있다.

무엇하나라도 대충 넘어가는 게 없고 열심히 하려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바리스타교육을 받게 되었고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다. 바리스타가 되게 된 동기에는 큰 뜻이 담겨져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지금은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커피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약간 어눌한 발음과 세세한 한국어까지는 다 이해를 못하는 결혼이민자다. 그렇지만 손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는 얘기도 웃으면서 한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즐겨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만든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숨쉬고 있다. 마리아노 오스피나는 커피를 직접재배하고 생산하며 판매까지 하는 전문 커피인이다. 그에 비해 그녀는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커피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다르다.

앞으로는 애정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커피에게만 쏟을 사랑과 정열의 시간이 그녀에게는 아직도 많다. 달콤한 커피를 좋아한다는 내게 카라멜 마끼아또를 권한다. 그녀는 흥분제 역할보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커피를 만들 줄 아는 커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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