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 연화지에서
해거름 연화지에서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4.10.2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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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가을은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 한낮 기온이 아침저녁으로 뚝 떨어졌다. 구월이 되면서 깊고 푸른 하늘과 만산홍엽으로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고즈넉한 산빛과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진 일요일이다. 
언덕을 천천히 오른다. 가을을 오롯이 느끼려고 미타사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든 상관없이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든든하다. 미타사로 가는 일주문 너머 지장보살이 보이면 두 손을 자연스레 모아 합장한다. 
마음이 편해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은 아니더라도 무상무념(無想無念)의 편안함으로 걸었다. 원불교대사전에 의하면 무념무상은 일체의 분별과 상이 끊어진 삼매의 진경으로 수행을 통해 분별 망상과 일체 애착을 넘어서 무아의 경지에서 도와 하나가 된 주객일체,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요원한 경지를 말한다.   내려오는 길에 있는 연화지를 가장 좋아한다. 
오가는 길목에 자리한 좋은 쉼터다. 여름이면 연꽃이 만개한다. 연꽃이 피고 지는 시기와 상관없이 주변에 앉아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음식으로 즐겨 먹는 연근조림부터 연잎밥은 물론 꽃과 잎을 차로 마시기도 하니 버릴 것 없는 수생식물이다. 게다가 연꽃의 씨앗인 연밥으로는 염주를 만든다. 
특히, 연꽃은 더러운 연못에서 깨끗한 꽃을 피워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중국 북송시대의 유학자이자 문학가인 주무숙(周茂叔)은 <애련설 愛蓮說>에서 연꽃의 덕을 찬양했다. 
그 구절은 “내가 오직 연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한다."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 핀다. 물이 맑아야 꽃이 예쁠 것 같지만 물기를 많이 빨아들이면 꽃 색깔이 예쁘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탁한 진흙 속에서 더 진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아무 생각 없이 연꽃을 보니 고요함이 밀려든다. 일상의 소음과 멀어지니 여유도 생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 동안 쉴 틈 없이 종종거렸다. 알게 모르게 받는 스트레스를 풀러 가끔 미타사를 찾는다. 거대한 지장보살 앞에서는 근심이 사라진다. 연화지에서 물끄러미 수면 위 연잎과 이름 모를 벌레를 바라본다. 세상일이 마음 하나로 바뀌는 순간이다. 별반 다를 것 없는 석양도 황홀하게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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