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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3.04.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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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준란 수필가.
지준란 수필가.

나는 밝은 웃음 속에서도 알지 못하게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삶이 힘들 때마다 술로 마음을 달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술주정을 하곤 했다. 그 술주정이 무척 싫어서 내 소원이 술을 마시지 않는 남편과 결혼이 간절했던 만큼 나는 술이 참 싫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나도 술을 먹으면 별로 취하지 않고 말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자제를 하고 먹지 않으려고 한다. 평소에 자상하고 좋던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자식들을 불러 놓고 밤새도록 말씀하시던 모습은 어린 나이에 이해되기 보다 상처로 가슴 깊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도 오빠들도 술을 드시면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같이 모여 술자리가 벌어지면 대화도 잘 안하고 집에 빨리 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두 오빠들은 서로가 아버지처럼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지 술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가 가슴 아픈 치부를 건드려 구순의 노모 앞에서 큰 소리로 싸움을 했다.

큰 오빠는 미국으로 유학 가서 사는 동안 맏아들로 돈만 쓰고, 한국에 계신 부모와 형제에게 미안함이 가득해 어깨가 많이 무거워 했다. 둘째 오빠는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직장도 안 다니고 결혼도 안하고, 지금까지도 소설을 쓴다고 극심한 자존심으로 버텨오고 있다.

그런 두 오빠들이 35년만에 처음으로 몇달 간 같이 지내게 되니 서로가 속에 있던 마음을 털어 놓다가 크게 싸우고 지금은 냉전 중이다. 얼마전 화해를 하기는 했지만 큰 오빠는 일산에 지인이 집을 빌려줘서 몇달 간 머물다가 미국에 들어가신다.

나는 두 오빠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제는 어렸을 때 형제 시절을 생각할 때가 아니고, 나이가 70인 어른이 되었으니 서로가 하고 싶은 말도 자제해야 할 텐데, 상대가 이해할거라고 생각하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로 서로의 치부를 건드리다니. 서로가 힘들었던 상처를 건드려서 말을 잘 섞지 않는 모습이 안 좋아 보이지만, 그 덕에 술자리도 없어져서 되려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형으로써 말을 다 하고, 동생으로써 형에게 존중하던 어린 아이들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도 형제라는 이유로 천국에 간 동생에게 잔소리 많이 했던 게 생각이 나 가슴이 많이 아프다. 좀더 이해하는 마음이 컸더라면 상처 주지 않고 좋은 언니가 되었을 텐데, 가슴이 먹먹하다.

남은 형제에게 상처주는 가슴 아픈 말은 하지 말고 좋은 말만 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무엇보다 대화의 기술을 몰라서 술을 빌어서 대화를 하려고 했던 오빠들은 이제 서로 편지를 써서 대화를 하는 듯 싶다.

서로가 쉽게 화를 내지 않고, 나의 마음이 어떻다고 표현하려는 모습이 다행스럽다. 소설 쓰는 사람과 수필 쓰는 두 사람, 이제는 단점을 보지 말고 장점만 보고 칭찬을 했으면 좋으련만, 상처가 있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물보다 피는 짙기에 상처는 치료 될 거라고 동생인 나는 믿고 싶고, 나 또한 상처를 치료 하려고 이렇게 글로 마음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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