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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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3.03.10 10: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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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시래기로 내가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인다. 멸치 다시마 육수를 우려내 친구가 담가준 된장을 풀고 끓이니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가득하다.

우리식탁은 참 간단하게 차려진다. 옛날식으로 간장 고추장 김치는 기본으로 올라가고 국이나 찌개에 그때그때 나물반찬이 전부다. 마른 반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 덕분에 식단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두부 한쪽 구우면 간장에 찍어먹고, 장날이면 고등어 사다가 한 마리 조리면 근사한 식탁이 차려진다. 문제는 아들이 직장 때문에 집으로 들어오고서부터다. 대학 때 집을 떠나 십 년 만에 돌아온 아들과 우리 입맛은 달랐다.

그동안 혼자 살면서 몸에 좋은 게 아니라 맛있는 것만 해 먹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아들은 요리를 잘 하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들은 먹는 것에 관심이 많다. 점심만 먹으면 저녁에 뭐 먹을 거야가 인사다.

그냥 있는 거 먹지하면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하고 시장을 봐 온다. 만드는 것도 아들 몫이다. 뚝딱 뚝딱하면 반찬이 아닌 한 가지 요리가 탄생한다. 아들은 아빠가 옛날 음식만 좋아해서 엄마 음식 솜씨가 늘지 않는 거라며 한 소리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쩌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도 있다. 남편 눈치를 보면 인사치레로 먹어주고 뜻이 담기지 않는 칭찬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아서 내가 혼자 먹다가 끝에는 버리게 되니 말이다.

가끔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하면 뭘 대접해야 하나하고 걱정이 앞선다. 늘 하는 대로 하던 버릇을 쉽게 고치기가 어렵다. 창의적이지 못 한 탓도 있지만 편하게 사는 게 몸에 밴 듯 하다. 애들 키울 때는 간식하나도 인스턴트를 먹이지 않고 만들어 먹이고 요리책까지 뒤적이며 정성을 다 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어릴 적에 먹었던 음식 메뉴를 대며 맛있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지금껏 음식 때문에 가장 난처한 일은 딸애를 결혼 시키고 사위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첫 생일은 장모가 해준다는 말을 듣고 식당에서 사 줄까 생각도 했지만 마음먹고 집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결혼해서 첫 번째 생일날 시어머니가 해 주셨던 기억을 떠 올렸다. 동네 새댁들을 모두 불러 함께 먹었던 추억을 사십년이 다 되어서도 잊을 수가 없다. 사위에게도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 내 방식대로 상을 차렸다.

사위는 차려진 상을 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복했다. 내가 민망해 하자 요즘 음식은 모양은 예쁜데 비해 깊은 맛은 적다며 말마다 칭찬을 더하며 잘 먹었다. 특별한 요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의 시골 잔치 상에 올렸던 잡채나 동태 찜 오징어 숙회 등, 정말 평범한 음식들이었다. 내 나름 정성을 다 한 것이 통했음에 기분은 최상급이 되었다. 사위는 이렇게 향수에 젖은 음식을 사 먹을 데도 없다며 좋아했다.

요즘도 딸을 가끔 만나면 반찬을 만들어 들려 보낸다. 남편에게 맛있는 저녁 차려 줄 생각에 기분이 좋다며 딸애가 웃는다. 그 말을 들으면 친정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시댁에서 분가하고 반찬 걱정하는 내게 엄마는 보따리를 들려주셨다.

보자기 속에 반찬들을 생각하며 좋아서 웃었던 때가 나도 있었다. 지금은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많은 세월이 흐른 것을 실감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우렁 쌈장에 수육을 한다고 아들은 부산을 떨고 있다.

칼과 도마에 채소들까지 씽크대 위는 정신이 없다. 그러는 아들이 대견해서 보조를 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투정만 하지 않고 직접 요리하는 아들 뒤에 며느리가 서있는 그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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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둘맘 2023-03-15 14:38:13
읽으면서 웃음과 미소가 묻어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