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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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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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2.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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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준란 수필가.
지준란 수필가.

오빠들 셋과 언니, 그리고 여동생이 있는 다복한 가정에서 나는 다섯째로 태어났다. 큰 오빠는 결혼하고 사업하다가 잘 안되어 어려운 가운데, 신학교를 늦게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교 4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간 큰 오빠는 지금까지도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 오빠는 대학 졸업 후 고시공부를 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25년 정도를 원고지와 싸우고 있다. 막내 오빠는 제천에서 부산으로 군대를 갔는데, 그곳에서 인연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10년 전에 뇌졸중으로 하늘 나라에 가셨다.

언니는 미국으로 시집을 가서 37년 째 이민 생활을 하면서, 몇 년에 한번 고향을 찾는다. 나는 직장 생활과 주말 농장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리고 내 동생은 7년 전에 대상포진으로 하늘 나라로 갔다.

그렇게 우리 6 남매는 이제 4남매만 남았고, 먼저 떠난 두 남매로 인해 우리들은 마음에 응어리를 안고 사는 중이다. 최근 언니 내외와 큰 오빠는 두 달 이상을 한국에 머무르게 되었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에 우리 4남매와 나의 남편과 형부는 구십 노모를 모시고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서로 여행 중에 좋은 이야기도 하고, 아픈 이야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훌륭하게 여행을 잘 마쳤다. 하지만 늘 좋은 이야기만 하던 것은 아니었다. 긴 시간에 걸쳐 서로 이민생활과 힘듦을 토로하였고, 서로 아픈 상처와 단점들이 보이는 것을 고쳐 보겠다고 이야기 하다가 결국 큰 싸움으로 이어졌다.

결국 서로의 가슴 뿐만 아니라 구십 노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우리가 어려서는 10년 정도를 같이 살았는데, 30년 넘도록 떨어져 생활 한 것을 잊고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을 해서 벌어졌던 일이었다.

각자의 힘들었던 것을 인정해 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공감하지 못했고, 그렇게 소통이 아닌 불통이 되어 버렸다. 과거를 꺼내고 지적질을 하고 내 가족은 내가 더 잘 안다는 그 거만함에서 비롯된 싸움으로, 지금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금 우리 가족은 긴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는 중이다. 큰 오빠는 장남으로서 큰 자식 노릇 못했다고 상처가 있고, 둘째 오빠는 이제껏 해 놓은 것이 없어 자존심만 내세우고, 큰 언니는 타국에서 있다 보니 잘 해보겠다고 잔소리를 했다.

남아있는 4남매를 위해 나는 무얼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 가족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좋겠다 다짐한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말을 조심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약점을 들춰내지 말고 감싸 주면서 이 힘겨운 터널을 빠져 나오고 싶다. 엄마가 얼마나 더 우리 곁에 계실 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밝은 얼굴로 다시 한번 가족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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