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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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2.12.0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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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 수필가.
강희진 수필가.

가을이 떠나가고 한다. 한동안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단풍은 져버리고 앙상한 가지가 쓸쓸하다. 지난주 단풍이 절정이던 때 대학 은사님을 만났다. 80이 넘으신 교수님은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라며 만나고 싶은 제자들 얘기를 했다고 한다.

곁에서 가까이 살고 있던 후배가 인터넷을 통해 나를 찾았고 연락이 끊긴지 30여년 만에 만나 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곱게 나이 드셨기는 했지만 보는 순간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던 50대 교수님의 웃는 모습, 말투까지 아직 생생한데 초로의 노인이 되어 계셨다. 

당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 목록 중에 나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 하시면서 “잘 살고 있으니 됐다" 하셨다. 교수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단풍이 너무 고아서, 굽은 허리의 교수님 뒷모습이 생각나서 가을을 핑계 삼아 펑펑 울었다.

쓸쓸한 마음이 쉬 지워지지 않아 며칠을 우울모드로 보냈다. 거기에 이태원 사태까지 겹쳐서 마음 둘 곳이 없다. 오늘 아침 지인이 보낸 카카오 톡의 내용이 유독 마음을 끄는 것은 이런 일련의 상황 때문이었을 것 같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이고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한 구절 때문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영화 제목에 끌려 '리멤버'를 보았다.

어떤 기억일까? 사전지식 없이 제목에 끌려 들어갔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누구는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잊혀 지지 않는 기억도 있으며, 또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기억도 있다. 주인공은 세 번째 해당자다.

80대 알츠하이머 환자가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60년 동안 계획했던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다. 일제 강점기 모든 가족을 죽인 친일파에게 복수를 하려고 한다. 알츠하이머 병 때문에 기억이 사라질까봐 손가락에 복수 하려고 하는 사람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겨두었다. 주인공이 지목 한 사람은 일제 강점기 친일파였으나 6.25전쟁 때 국군지휘관으로 활약하여 대한민국 전쟁영웅으로 평가 받고 있는 사람이다.

거기에다 현재까지도 아주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인물이다. 친일파 척결을 하지 못했던 국가, 처벌 받지 않는 범죄자로 이루어진 국가, 그 일을 개인인 주인공이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했다. 최근 이태원 사태에서 들어나는 부실대응을 보면서 또 한 번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는데 그 위에 영화내용이 겹쳐 쓸쓸했다.

우리는 대형 사고가 났을 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세월호 때도 그랬고 이번 이태원참사도 때도 그렇다. 국민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국가가 책임과 역할을 다 했는지 우리 모두는 묻게 되는 것이다. 꽃 같은 젊은이들의 죽음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교수님께서 지난번 농사를 지은 것이라며 사과를 보내주셨는데 어제는 감을 또 받았다. 첫 수확한 감이라고 한다. 내가 들어도 꽤 무거운 것을 제자 주겠다고 우체국까지 들고 가셨을 교수님을 생각하니 한쪽 가슴이 아려온다. 교단에서는 지식과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제는 손수 가꾸신 과일까지 받기만 하니 송구하기 그지없다.

교수님과의 만남이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80이 되었을 때, 죽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일까? 그리고 몇 명이나 될까? 그때까지 건강해서 그리운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보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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