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즐기며
가을을 즐기며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2.10.3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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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노란 은행잎이 쌓인 길을 걷는다. 작은 연못에 둥둥 떠 있는 붉고 노란 나뭇잎에 시선이 멈춘다. 화가의 그림에서 선명한 붓질로 그려진 듯 아름답다. 5분도 채 안되는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행복감이 밀려 온다.

시월은 눈부시게 파란 가을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눈앞에 하늘을 마주하며 혼자 감탄도 하고, 그 하늘 때문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옛 감성에 젖을 만큼 감미로웠고 가끔 친구 얼굴도 스쳐갔다. 세상을 떠난 이의 얼굴은 왜 가장 힘들 때 먼저 떠올리는 걸까?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보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수업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을 좋아한다. 토요일마다 청주로 수업을 가면서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꼭 챙긴다. 가는 시간 동안 준비해간 빵과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듣는 차 안은 온전히 내 세상이다. 그래서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지 않고 기분좋게 수업을 시작한다. 그 날이 가장 좋은 이유 중 또 하나는 점심시간이다.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혼자 식당에 가기가 어려워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즐겨 먹었다. 처음이 어려운 것처럼 한 두 번 용기내어 가다보니 이제는 어디를 가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 식당에 당당히 들어선다. 몇 년 전부터 혼밥이나 혼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부터는 가릴 곳이 없었다. 식당 좌석도 그에 맞춰 바뀐 곳도 많다. 토요일에 즐겨 찾는 곳은 초밥집이다. 점심특선으로 저렴하기도 하지만 맛이 일품이다. 초밥을 만들어 주는 요리사를 앞에 두고 칸막이가 쳐진 자리에서 맛에 집중해서 먹는다. 열심히 일한 내게 주는 선물이다.

잠들 때 마다 유튜브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처음 잠이 안 와서 먹방을 보게 되었는데, 그 뒤로 알고리즘으로 자주 화면이 보이고 클릭하면서 대리만족한다. 그리고 먹어 보고 싶은 음식의 리스트를 적어본다. 내가 스트레스가 생길 때 푸는 방법 중의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먹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체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서울에서 단체 방문했던 아이들이 보인다.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자리에 주저 앉아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노는 소리가 시골 마을의 정적을 깨뜨린다. 자연과 어우러져 즐기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여백을 채우는 가을이다. 자투리 시간을 즐기는 내 모습에 친구를 향한 그리움이 겹친 행복한 날이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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