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학생 동창회
불량학생 동창회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2.10.0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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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천변에서는 각설이 타령이 구성지게 울려 퍼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잔뜩 움츠렸던 사람들의 마음을 부풀게 만든 품바축제는 맑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푸르르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손님을 부르는 상인의 목소리와 조화롭게 들리는 풍악소리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품바 옷을 걸치고 축제장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하다.우리 문협에서는 품바축제 기간에 교복체험 부스를 담당하게 되었다. 애인끼리 친구끼리, 부부끼리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웃고 떠들며 또 하나의 추억을 싸 안고 돌아갔다. 교복을 입어 보지 못했던 노부부는 아내에게 교복을 입혀주고 자신도 교복을 입고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마치 고교동창생처럼 말이다. 노란 알루미늄 도시락을 얹어 재현한 난롯가는 인기 만점이다.

60대를 넘어선 사람들은 향수에 젖을 수 있는 알루미늄 도시락. 수업시간에 밑에 도시락은 맨 위로 올리고, 위 도시락은 밑으로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얼굴이 아련하다.

60대 엄마들로 구성된 한 팀이 체험하러 들어왔다. 역시 여자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들을 만나면 모두가 소녀가 되는 듯하다. 교복을 갈아입고 가방을 들고 잔뜩 멋을 부리고 사진 찍는 모습은 흡사 그녀들이 여고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맑다.

한바탕 부산을 떨던 엄마들이 몰려 나갔다. 그녀들이 흘리고 간 추억의 교복을 정리하며 그 옛날이 떠오른다. 손이 부르트도록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20십리 길을 쉼 없이 떠들며 걸었던 골목들이 눈에 선하다.

이번에 체험 온 팀은 아버지부대다. 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와 흡사 과거로의 여행을 하고 있는 듯 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자아내게 했다. 어깨에 둘러맨 가방에서 교련복 옷소매를 걷어 올린 폼새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아직도 저 버릇 못 고쳤다며 큰 소리로 웃는 아버지들의 웃음은 맑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청량했다. 자기들은 학교 다닐 때 불량학생이었다며 컨셉을 지금도 그렇게 잡아야 된단다. 앞서 다녀간 엄마들이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사진을 찍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칠판에 반장 누구, 당번 누구, 떠든 사람 누구, 이렇게 적는다. 그런데 이 아버지들은 떠든 XX 누구, 누구 때린 X 누구, 도시락 뺏어 먹은 X 누구, 라고 칠판을 꽉 채웠다. 그들을 보니 학창 시절 칭찬 받았던 것 보다 단체로 책상위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벌서던 기억이 더 또렷이 난다.

사진을 찍어 주며 그들의 웃음이 전이 되어 덩달아 행복했다. 우리는 불량학생 동창회라며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에서 어느 곳 하나에도 불량기는 없어 보였고 단지 우정이 넘쳐 보였다. 이제 나이가 좀 들고 보니 학창시절의 우정을 지키고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사는 곳과 환경이 다른데 학창시절의 우정을 어디에 담아서 보관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보관하기보다 찾아내서 가깝게 두어야한다. 우정이야말로 나이가 들어서 건강하게 늙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시월에는 우리 고향친구들이 뭉치기로 했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나의 옛날을 모두 불러 올 수 있다. 고무줄놀이하다 누구하나 넘어지면 무엇이 그토록 웃게 했는지 모르지만 동네가 떠나가도록 웃었었다.

누가 더 캘까봐 냉이 바구니만 들고 다니다 바구니를 못 채워 속상했던 일하며, 동네 빨래샘터에서 멱을 감다가 어른들에게 야단맞던 일도 지금은 즐거운 추억거리로 남아있다.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에게 품바축제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고, 어려운 일을 해 낸 듯한 뿌듯함까지 든다. 그리고 또 품바축제에서 걷어 올린 불량기 없는 우정이야말로 참다운 우정이라 말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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