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다듬어 주는 사람
행복을 다듬어 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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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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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수필가.
이재선 수필가.

바쁜 중에 짬을 내어 머리를 하러 갔다. 그런데 내 앞에 4명이나 있어 족히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다음에 올까 생각했지만 마음먹은 김에 하고 싶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 미용실을 이용한지 어언 삼십년이 되어간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끊지 못 하는 성격 탓에 그냥 다니다 보니 시간이라기보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내 머릿결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다른 곳으로 갈 엄두도 내지 못 한다.

이젠 거울에 비치는 미용실 원장님 얼굴만 봐도 그의 오늘을 알 수 있다. 웃으며 고객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오늘의 기분지수는 흐림 같다. “나 피곤해요”라고 얼굴 한쪽에 쓰여 있다. 앉아서 기다리다가 우연찮게 원장님 발밑을 보게 됐다. 미용실 바닥은 벽돌색 무늬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의 발밑만 색깔이 거의 지워져서 하얗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짠해졌다. 요즘 물건들은 품질이 좋기 때문에 장판색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싫증이 나거나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교체를 하지, 낡아서 바꾸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나 역시 이사 올 때 장판에 탈이 난 게 아니라 새집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교체했다.

장판을 언제 바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곳은 말짱한데 원장님이 움직이는 동선만 색이 변해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발밑에 장판색이 다 지워지도록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를 보면 늘 웃고 있다. 몸이 불편해도 찡그리는 법이 없다. 그의 마음을 읽은 고객들이 원장님 쉬라고 앉혀놓고 바닥을 쓸고 수건을 개준다. 십년 이상은 다녀야 그 집 단골이라 말 할 수 있다. 언제 가든지 반 이상은 아는 사람들이다.

미용실 원장님을 보면 어느 식당 생각이 난다. “반찬은 무한 리필”이라고 그 식당에는 쓰여 있었다. 사장님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 참 좋았다. 그 식당이야말로 처음 온 손님보다 단골이 태반이란다. 사장님은 고객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손님이 끊이질 않고 들고 난다.

미용실 원장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원장이 입을 꽉 다물고 머리만 만지고 있으면 어색하기도 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그래서 출근할 때 본인의 기분은 집에 두고 온단다. 그리고 고객의 기분이 본인의 기분인 듯 분위기를 맞춰준다. 다방면으로 아는 것도 많아서 머리하는 몇 시간이 즐겁다. 머리를 하고 덤으로 즐거움을 안고 온다.

고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 시간에 발밑에서는 땀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본인의 발밑에 장판색이 그토록 지워져 있는지도 모를 수 있다. 항상 다른 사람의 뒤에서 행복을 다듬어 주는 사람,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않고 늘 웃는 모습이 더없이 예쁘다. 자식들 다 결혼 시키고 좀 쉬어도 되련만 고객들만 생각하는 그 마음이 항상 고맙고 안타까울 때도 있다. 나 역시 미용실 문을 닫는다면 어디로 갈지 막막하다. 많고 많은 게 미용실이지만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내 머릿결을 어디서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이기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우울 할 때는 일부러 머리를 하러간다. 원장님의 웃는 얼굴이 나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 반찬을 마음대로 가져다 먹어 행복했던 그 식당처럼, 기쁨을 미리 만들어 놓고 나눠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더 이상 건강이 나빠지지 않아서 머리하러 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길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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