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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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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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며칠 전부터 거듭해서 당부하는 남편의 소리가 싫지 않다. 다른 때 같으면 잔소리처럼 듣기 싫었을 텐데 시간을 비워서라도 꼭 하고 싶었다.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당일 아침 현장으로 갔다. 바닥 콘크리트 타설이 있는 날이다.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현장감독으로 보이는 분께 막걸리를 어떻게 붓냐고 여쭈니 네 귀퉁이 바닥에 부으면 된다고 하신다.

형식을 갖춘 고사가 아니라서 간단했다. 남편 말에 의하면 막걸리를 붓고 절을 여러번 하라고 했는데 실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술을 붓고 고개 숙여 마음속으로 무탈하게 완공되기를 바랐다.

지난 가을부터 남편 혼자 동분서주하며 상가주택을 지으려고 뛰어다녔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일이 바빠서 관여할 겨를이 없었다.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그 전에 작은 건물을 짓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세웠다. 주변 지인을 통해 설계를 의뢰하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설계도면이 나왔다.

도면이 나오고도 쉽게 일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로 오른 건축자재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더 치솟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4월 말에 터파기가 시작되었다. 가족 단체방에 남편은 터파기현장 사진을 올렸다. 건축공사는 먼저 터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한다.

대지 안에 있는 대지 안에 있는 불필요한 암석, 수목, 기타 방해물을 옮겨 놓고 나무뿌리, 쓰레기, 기타 장애물을 치워버린다. 땅바닥이 높은 곳은 깎아 내고 낮은 곳은 돋우어 터고르기를 한다. 

건물은 짓기 전부터도 복잡했지만 지으면서도 할 일이 많았다. 먼저 임대사업자등록을 내면서 상호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가족 모두에게 상금을 걸고 제안했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순우리말로 상가 이름을 짓고 싶었다. 검색을 해서 '뜻을 이루리'라는 의미가 담긴 '루리'라는 말을 찾았다. 사업자등록증에 선명히 새겨진 '루리빌'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보인다.

우리 건물에 들어오는 모든 이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큰 꿈을 담았다. 흡족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없이 남편과 어려운 시절을 넘기고 자리 잡은 기쁨의 순간이다.

두 아들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고 싶은 꿈이 이루어졌다. 7개월 간의 긴 여정은 건축이 시작되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일부러라도 현장 앞을 지나가며 살펴본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 타지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두 아들도 바르게 자랐다. 막걸리를 붓는 짧은 순간에도 자식이 먼저 떠올랐다. 이제는 자식이 뜻을 이루는 세상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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