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12.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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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유리창으로 비추는 햇살이 따사로운 아침이다. 아파트 안에서는 바깥 날씨를 가늠하기가 어려워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바쁜 일정이 어느 정도 끝난 터라 거실에 앉아서 가만히 보니 켜켜이 쌓인 먼지도 눈에 띄게 보인다. 지금까지 살아 온 흔적의 단면이 모여 있는 기념패를 닦다가 유난히 작은 패를 정성스레 만진다.

두 달 전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별 생각없이 바쁘게 전화를 끊고 잊고 지냈는데 얼마 뒤 기념패 하나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한국종이접기협회에서 보내왔다. 협회에 가입한 지 20년이 되어서 기념패를 보낸다고 들은 것 같은데 명함 크기의 금박카드가 아크릴 안에 들어 있었다. 금빛으로 선명한 '명예의 전당'이란 문구에 가슴이 뛴다. 그런 자리는 나와는 무관하며 더 유명하고 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이의 일이라 생각했다.

첫 아이가 세 살 무렵, 지인의 소개로 종이접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배우는 종이접기는 재미있고 신기했다. 과제가 주어지면 빨리 접고 싶어서 머릿속에 종이만 가득했다. 그 때는 숙직이 있었는데 남편이 없는 날이면 아이를 재우고 밤 새워 종이를 접으며 행복해했다. 지인이 연결해 준 그 길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운 좋게도 자격증을 따자 마자 방과후 수업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내 자신이 대견하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배웠다. 방과후 수업을 시작할 때만해도 내가 가진 기술이나 배움이 부족했지만 늘 도전하며 멈추지 않았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수업하면서 실감한다. 그동안 쌓은 기량은 언제 어디서든 대상에 맞는 수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고, 자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작년에 코로로나 수업이 일시적으로 중단됐을 때도 관련 자료를 찾고 공부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준비하고 나니 다행이도 수업과 연결되어 자신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는 소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반복적으로 배운 것은 나이가 들어도 몸이 기억하고 먼저 말을 한다.

누구나 욕심의 대상이 있겠지만 나는 배움에 대해 특히 그렇다. 주변에 아는 이가 배우는 모든 것이 탐나고 질투한다. 이제는 젊을 때처럼 몇 가지를 한번에 배울 여력은 없지만 여전히 갈증을 느끼며 준비한다. 나를 더욱 빛나게 해 준 '명예의 전당'은 평생 걸어가도 좋을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종이접기와 인연을 맺어 준 지인도 두고 두고 잊지 못한다. 모든 것이 고맙고 따사로운 한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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