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VS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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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1.11.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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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갑자기 수업이 끊겼다. 휴대전화로 환경설정을 바꿔 연결해도 마찬가지다. 마침 집에 와 있는 둘째 아들을 깨워서 인터넷망을 봐 달라고 했다. 나보다는 젊은 애들이 컴퓨터를 더 잘 알고 있어서 금방 해결될 줄 알았다.

공유기도 전원을 켰다 끄고 네트워크 어댑터도 이리저리 만졌다. 휴대전화도 인터넷이 끊겼다.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어서 학생들에게 문자로 수업을 못 하게 됨을 알린 후 고장신고를 했다. 신고 전화는 연결량이 많아서 통화할 수 없었다.

그 날 저녁 뉴스를 통해 인터넷망이 대규모장애로 1시간동안 전국적으로 마비가 되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통신사측은 대규모 디도스 공격이 발생해 장애가 빚어졌다며 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 때문이라는 원인을 밝혔다.

즉, 데이터가 목적지까지 이동하게 경로를 설정해주는 라우터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그로 인한 피해는 상당했다. 어떤 이는 ‘강물에 오염수가 퍼진 것’이라는 비유를 할 만큼 심각했다. 식당은 배달앱을 통한 결제를 못해서 주문해 놓은 식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랗다.

며칠전 혼자서 컴퓨터 프로그램의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실행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나도 모르게 삭제해 버려서 PPT 문서가 열리지 않았다. 실시간 화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면서 꼭 필요한 문서였다.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PDF로 변환한 파일을 받고 겨우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작년에 한국어 수업을 온라인으로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나름 컴퓨터도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도 컴퓨터의 복잡한 세상을 가늠할 수 없다.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 속에는 무수한 회로칩이 심장처럼 뛰고 있다.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전까지 집착한다. 잠이 오지 않던 날 밤, 유튜브로 먹방을 보게 되었는데 그 뒤로 알고리즘이 계속 연결돼서 궁금증에 누르다보면 새벽이다. 쇼핑을 하며 검색하는 품목도 알고리즘으로 자극한다.

스물 네 시간 나를 감시하는 눈이 수천 개 컴퓨터 속에 존재하는 듯하다. 나에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있는 걸까? 어느 오후 집 앞에서 위성사진에 찍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날로그 세대인 내가 좇아가기에 버거운 세상이다. ARS가 사람 대신 응대하고 음식점에서도 주문기계가 있고, 무인 점포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은 사람인데, 모습을 기계뒤로 숨긴 것 같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공지능 로봇처럼 심장이 기계로 되어 있는 세상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언제나 그 중심에 사람이 있음은 분명한데 통신망의 마비는 사람에게 치명적이다. 씁쓸한 기분 그대로 내 삶은 알고리즘에 노출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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